설맞이 전동 윷놀이 만들기

제비 다리몽둥이 와작 부러뜨려 받은 씨앗도 제대로 된 씨앗이긴 한 모양이다. 번쩍번쩍한 기왓장 사이를 넘고 타며 박이 주렁주렁 열렸다. 아따 저 놈들 탐스럽구만, 하나 나눠주면 안 되겠나? 입맛 쩝쩝 다시며 그리 물어오는 이웃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 놀부가 대체 어떤 위인인가. 친동생 줄 재산도 없는데 담 넘어 이웃에게 넘어갈 박이 있을 리가 없잖은가. 대문 꾹 닫아걸고 박 여물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황금 햇살 쏟아지는 어느 가을날 드디어 박을 뚝뚝 따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대박의 기운이 가득하다. 그래도 요놈이 잘 말라야 타지. 말은 그리 하며 창고 안에 꼭꼭 숨기는 세상눈을 피하기 위해서 아니겠나. 기왓장 걸친 박 넝쿨이 시커멓게 말라 죽어 뚝뚝 떨어지는 정월 초하루에 그제야 두 내외 마당에 고급 비단 턱 하니 깔아놓고 박을 똘똘 굴려 나온다.

드디어 타는구려.
타야지.
뭐가 나올까요.
봐야 알지.

불퉁하게 이야기하지만 내외 입술이 짐짓 실룩대는 것이 기쁘기 한성에 한량없는 속내가 절로 드러난다. 요걸 탈까 조걸 탈까. 느릿느릿 움직이는 놀부 손길에 속 타는 놀부 마누라가 툭 튀어 나와 하나를 들고 자리에 폭 주저앉으니, 늦가을 마당 먼지가 풀썩풀썩. 입 삐죽하게 내밀고 배 실룩대던 놀부도 제 성질은 급한지라 같이 푹 주저앉아 톱을 든다. 박 하나를 슬근슬근 타보자꾸나.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데구루루 굴러 나오니 이것이 무엇이냐?

수수깡?
수수깡일세 그려.

또르르 또르르. 맑은 소리와 함께 구르는 긴 대 하나에 내외는 멍해져서 잠시 손을 멈추고 박 안을 기웃기웃한다. 방금 구른 놈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다시 한 번 표정이 멍해진다. 이것은 꽝인게야. 꽝이겠지요. 서로를 위안하듯 건넨 말을 다시 톱에 싣고 두 번째 놈을 타보자꾸나. 그래 또 박에서 뭔가가 펑 하더니 데구루루 나오는구나.

이 고철 덩어리는 뭣이야?
거 참 작구만.

슬슬 언성이 높아지는 품이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으렷다. 손 안에 쑥 들어갈 작은 철 덩어리를 만지작대는 놀부 마누라는 이미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다. 그래도 가장입네 ‘커험’ 헛기침을 한 놀부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박 하나를 더 집어 들고 오니 이미 덩어리를 집어 던진 마누라가 째려본다. 아 그래, 가엾은 짐승 하나 해치고 얻은 재물이 겨우 요것이었소? 눈으로 전해지는 말에 놀부가 또 한 번 헛기침을 커험.

내 눈이 어두워 채 여물지 못한 놈을 고른 게지. 이번엔 뭔가 재미난 게 나오지 않겠소?
에잉 나와야지. 안 나오면 내 열불 올라 서방 다리를 고만 똑 부러뜨릴 지경이오.
아이구야 말도 무섭게 하시는구만.
내가 누구 옆에서 살며 심성 다 버려 이렇소.

오가는 말만큼 톱질도 험해지니 박 껍데기를 벅벅 긁어대는 소리만 눈 시리게 찬 하늘 아래 크게 울리는구나. 다시 한 번 펑 하더니 이번엔 여러 개가 우르르.

아이구야 나왔구만.
그런데 이게 또 뭣이야?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종지 같은 게 하나, 긴 선이 여러 개. 그래 종지야 물 뜨러 갈 때 쓴다 치더라도 요 놈의 선들은 어디 쓸까? 남은 박이고 뭐고 죄다 깨부술 기세로 창고로 달려가는 마누라 치맛자락 붙잡고 놀부가 사정사정 하니 박이 아까워서기도 하고 제 다리가 걱정되기도 해서다. 그 때 뾰로롱 날아드는 놈이 하나 있으니, 까맣고 하얀 깃털 맵시 있게 기른 제비 한 마리다.

성질도 급하게 벌써 타셨소. 제가 늦었네요.

입에 문 덩어리를 내려놓으며 재잘재잘 높은 소리로 소리를 내는데 다리 한 가운데가 볼록한 것이 지난 늦여름 운 없이 잡힌 그 제비가 맞는 듯하다. 놀부가 끄응 하니 마누라도 끄응 하는 것이 저들이 저지른 짓이 기억나기 때문이렷다. 내외가 이러든 말든 제비는 힘차게 뱅뱅 돌며 마당에 내려앉아 고개를 갸웃갸웃한다. 맑은 눈빛이 비단 위를 요로조리 훑더니 표정이 더욱 환해진다. 예전에 당한 일쯤 아무 문제없다는 태도다.

윷놀이를 합시다요.
윷놀이?
그렇소이다. 그게 다 윷놀이용 물품입지요.

다리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요리조리 콩콩 뛰며 부리로 재료를 모아댄 제비가 다시 한 번 높은 소리로 재촉을 해댄다. 윷놀이, 윷놀이, 윷놀이를 합시다요. 정월 초하루에 윷놀이 하는 거야 알고는 있다만 부모님 살아계실 때나 그러했지. 게으르고 일도 안 하면서 식솔만 주렁주렁 늘려가는 흥부네를 보다 못해 내쫓은 날 이후로 윷가락을 본 기억도 없다. 그러던 말던 혼자 쫑쫑 정신없이 오가던 제비 놈은 어디서 칼 하나를 덥석 물어와 턱 내려놓는다. 시퍼렇게 날선 칼날에 놀부 마누라는 제풀에 아이고 비명을 지르는데 제비 눈빛이 부드러운 게 사람 해칠 낯은 아니다.

먼저 수수깡을 잘라야 합니다요. 어서요.
거, 내가 저지른 짓은 말이다.
거 참, 시간 없어요. 정월 초하루 해는 성질이 두 내외분보다 급해서 금세 꼴딱 집니다요. 어서 자르자구요. 그래그래, 그렇게 반쪽으로 자르면 됩니다요.

어찌나 재촉 해대는지 사죄도 후회도 죄다 날리고 일단은 칼을 잡아 본다. 시키는 대로 이래저래 잘라보니 어찌 윷가락 비슷한 놈이 네 조각 뚝딱 나오렷다. 마누라가 정성스레 표시 그려 넣는 새에 가장은 종지에 철 덩어리와 선을 연결하느라 낑낑댄다. 시끄러운 제비 놈이 물고 온 또 다른 덩어리에 연결하니 종지가 빙글빙글 도는 바람에 깜짝 놀라 놓칠 뻔하기도 한다. 그새 제법 윷가락 형태를 갖춘 수수깡 조각을 들고 온 마누라는 신기한지 종지만 빤히 바라보고 있다. 제비 말에 따르면 전동기라나.

자 이제 한 번 윷가락 넣고 종지를 휙 뒤집어 보세요. 가만히 있는 종지에 수수깡 조각을 넣고 뒤집으면 조각들은 바닥에 쏟아지겠지요? 다시 전동기를 돌리며 넣어 보면, 아이고 안 떨어집죠. 요 때 딱 전동기를 멈추면 윷가락이 우르르르, 저는 걸이네요. 먼저 가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종지를 들었다 놨다, 윷가락을 떨어뜨렸다 놨다 하는 동안 어디서 찾았는지 먼지 쌓인 말판을 들고 온 것은 놀부 마누라다. 한 십오 년 둘이서 산 게 헛세월은 아니었나 보다. 제비가 걸이오, 놀부가 개요, 놀부 마누라는 윷이라 한 번 더 던져 도요. 한동안 전동기 도는 푸르르 소리만 이어지다가 또 제비가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한다.

돌아가는 종지 속에 있는 수수깡 윷가락은 처음 움직이던 방향대로 직진하려는 성질 때문에 종이컵 바깥방향으로 힘을 받습니다. 이런 성질을 관성이라 하지요. 놀부가 계속 마음과 달리 심술을 부리고 흥부가 계속 가난하게 사는 것도 생활 속의 관성이랄까. 아이고 요 말은 과학과는 관계없지만요. 그렇게 튀어나가려는 윷가락들을 이 종지가 막아 주고 있기 때문에 튀어나가거나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른 식으로 풀면 원심력과 구심력도 설명할 수 있습지요. 빙글빙글 도는 원운동을 하는 물체는 원 밖으로 향하는 원심력을 받아요. 하지만 원 안으로 향하는 구심력이 또 작용하기 때문에 계속 원 위에 있을 수 있지요. 그러다가 전동기를 딱 멈추면 이런저런 힘도 사라지고 윷가락들은 바닥에 우르르 쏟아집니다요. 고걸 보고 말을 움직이면 되지요.

그 사이에도 말이 차례대로 오가니 조용조용 어느새 놀부 마누라의 승리. 어찌나 조용하게 해갔는지 이긴 사람도 밋밋하고 진 놈도 덤덤하니 슬슬 넘어가는 햇살만 말판을 붉게 비춘다. 이쪽저쪽 눈치를 보던 제비가 이때다 하며 날개를 펄럭이니 내외가 깜짝.

그래 두 분이 하시면 재미없죠잉?
시끄럽다 이 녀석아.
거 원래 윷놀이라는 게 여러 무리가 해야 재미난 법입니다요.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옛날 옛적 만주 벌판에 부여가 있던 시절 그 나라 사람들이 각 부족의 가축을 경쟁적으로 키우기 위해 윷놀이를 했다 하네요. 도, 개, 걸, 윷, 모 이게 다 가축 이름이라 이 소립니다요. 이 집에 가축은 많은데 사람은 적으니 도부터 모까지 언제 다 키우실 겝니까. 이왕 하실 거면 사람 많은 집에 가서 같이 즐기시는 게 어떠신가요. 그러니 동생 분 댁으로 가시죠.
뭐라고?
아이고, 말 못 알아들으시는 척 하긴. 거 바로 옆 고을에 있잖습니까. 요새 새로 지어서 그렇게 쾌적하다던데. 정월 초하루에 인사도 할 겸 해서 한 번 같이 가십시다. 저도 신세진 게 있다 보니 같이 인사드리면 좋을 것 같고요.
싫다. 내가 왜.
정월 초하루 하면 새해를 시작하는 커다란 명절이지요. 원래 명절은 가족 친척 모여 인사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고 허물도 좀 덮어주고 지내다 오는 그런 날 아닙니까요.
사이 나쁘고 척지고 원한 쌓인 이들끼리 그 날 하루만 그러면 뭐한대. 그게 다 전통이라는 이름의 허상이여.
아 거야 저도 알고 있지요. 그래도 말입니다. 또 마음 상해서 다시 1년 내내 싸우더라도 하루쯤은 다 같이 웃으며 윷도 굴리고 말도 옮기고 머리싸움도 하고 그리 사는 게 나쁜 건 아니잖습니까.

윷가락 종지에 척 하니 모아놓고 혼자 신나게 떠들어대는 제비의 주둥아리 끝은 왜 그리 뾰족한지. 과거의 제 언사가 그대로 돌아와 마음을 찌르는 듯해 놀부 입만 괜히 더 나온다.

동생분만 부자 되니 배알 좀 꼴리셨죠? 아이고 말씀 안 하셔도 다 압니다요. 굳이 그렇게 착한 척 안 해도 척 보면 딱 아니겠소.
요놈의 제비, 주둥아리도 확 부러뜨려줄까.
말씀 그렇게 하셔도 절대 못 하시는 것도 압니다요. 제 다리 망가뜨리시고 계속 마음에 걸려하신 것도 말입죠.
에끼 이 놈 헛소리도 작작….
아 뭐가 그리 어렵습니까. 한쪽 성별 노동력만 쏘옥 빼내서 종일 음식을 만들거나 시댁친정 어디에 먼저가 어디에 오래 있느냐로 언성 높여야 하는 그런 명절이란 이름의 착취도 아니고 그냥 이웃 고을 동생 분 집에 잠깐 인사가서 윷가락이나 좀 던져보자는 건데. 이 기회를 틈타 화해할 방법도 찾아 보시구요. 심술은 좀 있지만 물려받은 재산 잘 보존해 키우신 건 형님이오, 게으르고 능력 없지만 바보같이 착한 태도로 인심 모은 건 동생이니 형제의 힘을 합치면 훨씬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언제까지 시샘하고 부러워하고 또 후회만 하면서 지내실 겁니까.

어서 가시지요, 명절은 그런 날이니까요. 노래하듯 같은 구절을 반복하며 날아오른 제비의 모습은 이미 저 위의 한 점이 된다. 말마따나 성질 급한 해가 꼴딱 넘어가 언덕에 걸리고, 높이 솟아오른 해 마냥 둥글고 통통한 박들도 이젠 반 갈린 바가지로 변해 마당 여기저기서 데구루루. 제비 따라 대문 밖으로는 나왔다만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끝을 세워 뒷짐 지고 올려다 본 정월 초하루 하늘은 어느새 밤으로 덮여 간다. 한 발 내밀었다가 뒤로 돌렸다가, 내 발이 말인가, 도와 뒷도만 반복하는구나. 느릿한 발걸음을 따라 혼잣말이 길게 늘어졌다. 모로 가든 도로 가든 집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법이라오. 같이 늘어진 마누라의 농에 내외가 함께 피식. 성질 급한 해 덕분에 밤이 긴 것이 그저 다행이다. 어느 쪽이든, 집으로 갈 수는 있을 테니.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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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으로 움직인다! 자벌레 만들기

청량한 숲 향기를 깊이 들이마신 나무꾼은 들이마신 숨 이상으로 깊은 한숨을 뱉어냈습니다. 근심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근심이 없는 것 또한 아니지만, 지금의 한숨은 안도에 가까웠습니다.

“갔다. 나오거라.”

한참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더니 나무가 가득 쌓인 등짐에서 나무 같은 뿔 두 개가 뾰족하게 솟았습니다. 오른쪽으로 뾰족, 왼쪽으로 뾰족 느릿느릿 한 바퀴 돌더니 등짐 앞쪽으로 조심스레 나옵니다. 뿔이 공중을 떠다닐 리는 없으니 그 밑에는 필경 짐승 하나가 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도 겁에 질린 듯 눈물을 글썽글썽 매단 호수 같은 눈망울도 둘이 솟습니다. 갈색 반점이 사랑스러운 사슴입니다.

“감사하옵니다. 은인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뭘 했다고 그러느냐. 너같이 아담한 짐승 한 마리 숨겨주는 것 정도야 별 일도 아니란다.”

길게 뺀 목을 연신 조아리며 감사의 예를 올리는 사슴 앞에서 나무꾼은 그저 무뚝뚝하게 답할 뿐이었습니다. 사슴이 싫어서는 아닙니다. 성격이 고지식하고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눈치 챈 일이기에 사슴도 과히 싫은 눈치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은인께 아무 것도 아닌 일이라 해도 생명을 건져주신 은혜는 은혜. 한낮 미물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천하오나, 그래도 능력을 한껏 발휘해 그 은혜를 갚게 해주시면 감사하겠나이다.”
“그런 거창한 일은 아니라 했지 않았느냐.”
“제가 마음이 불편하옵니다. 부디 청을 들어주시옵소서.”

사슴의 고개가 거의 땅에 닿을 듯 굽혀집니다. 연신 손사래를 치는 몸이나 거절을 표하는 입과는 대조적으로, 나무꾼의 귀는 저도 모르게 쫑긋 서 있습니다. 이 작은 것이 얼마나 거창한 일을 해주려나. 어쩐지 저 숲속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습니다. 사슴도 눈치 못 챈 바는 아니지만 자못 시치미를 떼며 얌전하게 고개를 들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건 어디에서나 같은 법이니까요.

“저 같은 미물의 힘으로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선물을 드리려고 하니 그리 염려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작은…, 흠흠. 알았다. 내 얼마든지 기다릴 테니 천천히 하거라.”

‘미물이 준비할 수 있는 작은 선물’이 대체 뭘까요. 나무꾼은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표정은 무뚝뚝한 그대로지만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것만은 멈출 수 없습니다. 뒤돌아서 부스럭대는 사슴에게는 보이려야 보일 수 없는 광경입니다만.

돌아선 사슴의 주둥이는 은색의 물체가 물려 있었습니다. 크기는 손바닥에 쏙 들어올 정도일까요. 기대하고 있던 무언가 - 이를테면 돈이라든가, 예쁜 색시라든가 - 가 아닌 걸 확인한 나무꾼의 표정은 대놓고 구겨졌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슴은 우물거리는 발음이나마 똑바르게 이야기했습니다.

“혹시 납작하고 단단한 것이 없겠습니까?”
“아, 여기.”

시큰둥하게 내민 손끝에는 판판한 나무판자가 들려 있었습니다. 사슴은 말없이 주둥이로 물어 올린 은색 물체를 그 위에 툭 떨어뜨렸습니다. 제법 묵직한 무게와 뜬금없는 행동에 놀라서 판자 째로 떨어뜨린 은색 물체는 판자 위에서 홀로 이리 데굴, 저리 데굴 구르다 제자리에서 가만히 떨었습니다. 그 모습이 또 귀엽기는 합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나무꾼의 머리 위에 다시 발음이 명료해진 사슴의 목소리가 툭 떨어졌습니다.

“혹시 ‘관성’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관상은 들어봤다만. 그 점쟁이 말에 따르면 내가 예쁜 색시를 맞아서 평생 행복하게 살….”
“관상 봐주는 사람은 점쟁이가 아니고, 무엇보다 현재 화두는 관상이 아닌 관성이옵니다. 헛소리 마시고 계속 들으시지요. 물체에 아무런 힘이 작용하지 않을 때, 물체가 원래의 운동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을 ‘관성’이라고 합니다. 정지해 있던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운동하던 물체는 그 운동을 계속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지요.
“슬슬 말이 거칠어지는구나. 그게 네 본성이냐.”
“저처럼 착하고 고운 미물에게 그 무슨 잔혹한 말씀이십니까. 어쨌든 마차를 타보신 적이 있으시겠지요? 저 숲 너머 인간 세상에서는 버스라는 마차가 있습니다만, 말 대신 엔진이라는 물건으로 움직입니다. 그 버스를 타면 말입니다, 갑자기 멈춰 설 때 몸이 앞으로 쏠립니다. 버스가 달릴 때 거기 탄 사람들 몸은 버스와 함께 앞으로 향하고 있는데 버스가 갑자기 멈추면 몸만 관성에 따라 앞으로 계속 가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버스가 갑자기 출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정지해 있으려 하기 때문에 몸이 등받이나 뒤쪽으로 넘어가지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제가 드린 물건의 안에는 단단한 관과 구슬이 들어있사옵니다. 아까 내어주신 판자 같은 넓은 판에 그 물건 - 일일이 물건 물건 하기 귀찮으니 그냥 자벌레라 하겠사옵니다만 - 을 얹고 기울이면 자벌레가 꿈틀대며 계속 혼자 움직이는 걸 보셨지요. 왜 이리 되는고 하니, 자벌레를 기울이면 구슬이 한쪽으로 이동하면서 가벼워진 쪽이 올라갑니다. 구슬은 계속 이동하려는 관성에 의해 가벼운 쪽으로 다시 이동하고 이 움직임은 계속 반복됩니다. 그러한 원리이옵니다.”

긴 설명을 끝낸 사슴은 다시 촉촉한 눈망울을 들어 나무꾼을 똑바로 쳐다봤습니다. ‘어때? 신나지? 재미있지? 나 잘했지?’가 가득 담긴 눈망울을 마주한 나무꾼은 어쩐지 거북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며 더듬더듬 말을 꺼냈습니다.

“조, 좋은 말 잔뜩 들었다. 설마 그 말이 선물은 아닐 테고. 이 물건이 선물이냐? 이걸 왜 내게 주느냐?”
“아까 보셨듯이 그 물건의 움직임이 제법 기특하고 또 귀엽습니다. 홀로 지내시느라 쓸쓸하실 때마다 한 번씩 꺼내 보시면 삶이 꽤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준비했사옵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만.”

나무꾼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홀로 지내시느라 쓸쓸하실 때’가 있는 걸 알면 또 다른, 굳이 말하면 자기 몸과 마음을 울리는 그런 욕구를 풀어줄 무언가를 준비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좋다 아니다 말도 없이 한숨만 폭폭 쉬어대고 있는 나무꾼 앞에서 사슴의 눈망울이 다시 울망울망 눈물을 매달기 시작했습니다. 걱정하듯이 고개를 살짝 기울인 사슴이 머뭇머뭇 이야기를 꺼냅니다.

“저어, 마음에 들지 아니하신 겁니까?”
“아니, 선물은 고맙다. 고마운데 말이다….”
“말이다…? 제가 뭘 잘못했사옵니까?”

새침하게 고개를 갸웃대는 사슴 앞에서 나무꾼은 그 날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말이다. 내 본능은 이게 아니라고 외치고 있거든?
“허어? 본능이 뭐라고 외치시고 계시는 겁니까?”

사슴의 맑은 눈이 점점 흐려져 갑니다. 하지만 고지식하고 답답할 뿐 아니라 눈치도 꽝인 나무꾼은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입을 점점 과감하게 놀려 갔습니다.

“보통 이럴 땐 그 뭐냐, 어여쁜 선녀님을 내 색시로 맞을 수 있도록 이렇게 저렇게 해주는 거 아니었냐? 목욕탕 급습이라던가, 옷을 슬쩍 훔치게 귀띔한다던가, 왜 거 있잖냐.”
“이보쇼.”
“그래, 이보…, 뭐라고?!”

갑자기 돌변한 사슴의 말투에 나무꾼은 잠시 멍해졌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슴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온 얼굴에 띄운 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앞발을 까닥거리며 나무꾼을 째려봤습니다.

“내 진짜 기가 막히고 코까지 막혀서 말을 못하겠네. 거 곰방대 좀 주실라우.”
“곰방대?!”
“아 달라면 빨리 주쇼. 뒷다리로 차버리기 전에.”

나무꾼은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슴 앞에 얌전히 곰방대를 내려놓았습니다. 갈라진 앞발굽 사이에 곰방대를 끼운 사슴은 능숙하게 불을 붙이고 힘차게 빤 다음 가득히 토해냈습니다. 어쩐지 포도청 취조실에서 범인과 5시간쯤 공방을 벌이다 휴식을 취하는 포도부장 같은 기세입니다.

“아이고! 이 양반아, 정신 차리시게.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그런 소리를 하고 앉았나. 댁이 하려는 행위를 세간에서 뭐라 하는지 아시우? ‘납치강간’이라고, 범죄라고 이 양반아!”
“버, 범죄?”
“그래, 사람이 살다보면 쓸쓸할 때도 있고 그런 법이지. 그런데 그걸 왜 자기 힘으로 극복 못 하나. 본인 힘으로 여자 찾아서 장가를 들던가…. 솔직히 불어보쇼. 노력해본 적은 있수? 그 나이 먹을 때까지 산에 처박혀 있지는 않을 테고, 좋다는 여자 한 둘은 있었을 거 아뇨?”
“그, 그래! 있었다 왜! 있긴 했지만 다들 박색에 나이도 꽤 먹어서는….”
“아이쿠야. 생각해 보쇼. 댁 나이 몇 살? 재산 얼마? 거기에 얼굴에 나이까지 밝혀? 이 양반 알고 보니 도둑놈이네~.”
“뭐, 도둑놈?!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냐?”

이제 숫제 삿대질까지 해가며 화를 버럭버럭 내는 나무꾼과 대조적으로 사슴의 표정은 점점 침통해져 갑니다. 곰방대를 물고 다시 한 번 깊숙이 빨아올린 사슴은, 그래도 여전히 맑은 눈망울을 먼 하늘로 돌리며 나지막이 읊조렸습니다.

“사람이란 말이오, 대저 저가 해온 대로만 하려고 하거든. 이게 참 버스를 탄 것도 아닌데 가던 사람은 계속 가려하고, 멈춰있는 사람은 계속 멈춰 있으려 해. 짝을 찾을 때도 게으른 놈은 끝까지 게을러. 저는 안 움직이고 오는 것만 취하려 들지. 그런데 또 가리는 건 많아. 자기 힘으로 열심히 살아온 삶에 긍지가 있으면 말이오, 마음에 드는 처녀에게 그 긍지를 당당히 보여주면 될 것 아뇨. 해본 적 있수? 솔직히, 없지?”

사슴의 목소리가 담배 연기에 실려 함께 퍼집니다. 어쩐지 기세에 눌려, 그리고 또한 사슴의 말이 사실이기에 할 말을 잊은 나무꾼을 다시 쏘아본 사슴은 곰방대를 길게 뻗어 나무꾼의 가슴을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뭐?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붙잡아서 평생 같이 살아? 자기 삶 잘 살아가던 여자 인생 하나 깨끗하게 말아먹고 본인만 행복하면 다요? 그것도 같이 알아온 사람도 아니오, 분위기나 배경이 잘 맞는 사람도 아니오, 마음을 맞춰본 것도 아니오. 그냥 예쁘고 날씬하면 장땡이다~하고, 덜렁 붙잡아서 데려가다니 그건 또 무슨 짓이냐고.”

사슴은 곰방대를 바닥에 패대기치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바닥을 구르던 ‘자벌레’를 입으로 물어 올려 나무꾼 앞에 툭 떨어뜨린 사슴은 뒷발을 구르며 콧김을 내뿜었습니다.

“댁 같은 인간에겐 이게 딱 어울리오. 어디 평생 관성에 따라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봤자 좁은 판 위에서 힘 다 떨어져 바르르 떠는 것도 못할 때까지 꿈틀꿈틀 살아보쇼. 난 가오!”

처음의 가련한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힘차게 숲 저편으로 사라지는 사슴의 꽁무니를 나무꾼은 그저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사슴이 일으킨 흙먼지도 희미하게 사라져갈 무렵, 겨우 떨리는 손으로 자벌레를 집어 들어 손바닥 위에 가만히 얹어봅니다. 나무꾼의 손바닥 안에서 이리 꿈틀, 저리 꿈틀 움직이다가 결국 톡 떨어진 자벌레는 숲 저 안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가 버렸습니다. 마치 사슴을 따라가듯이, 또는 나무꾼을 멀리하듯이. 홀로 남은 나무꾼의 옆에는 그저 못 박힌 채 가만히 서 있는 등짐만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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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과학법칙의 거짓과 진실우리는 과학을 접할 때 무조건 어렵다고 느끼거나 모두 사실일 것이라는 선입관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과학 관련 글을 읽을 때 비판적으로 읽기보다는 설명된 내용을 받아들이기 위해 집중한다. 지금까지 천재적인 과학자들 덕분에 어려운 과학 이론이나 법칙들이 완벽하게 잘 정립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과학자들이 지금 보면 엉뚱해 보이는 이론들을 그럴듯하게 내놓고 실패를 거듭하며 탐구한 결과다. 현대과학으로 보면 사실은 아니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엉뚱 과학 중 역학 관련 법칙을 몇 가지 소개한다. 

● 무거운 것이 빨리 떨어진다? - 낙하속도 질량비례의 법칙 

오래전부터 믿어 온 법칙으로 중력에 의한 낙하속도는 질량에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누구나 경험한 바와 같이 무거운 물체는 떨어질 때 육중하게 떨어지는 반면 가벼운 물체는 사뿐하게 떨어진다. 고층건물에서 사람이 떨어지면 크게 다치거나 죽지만 어린아이인 경우 상처 하나 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동물로 예를 들자면 고양이는 사뿐히 내려앉으며 먼지나 날파리 같은 것들은 떨어지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낙하속도가 질량에 비례한다는 법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제시한 이론이다. 그리스 최고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대학자가 한 얘기이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후에 갈릴레오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 오래된 법칙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낙하속도는 무게와 상관없이 일정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피사의 사탑에서 수행한 실험을 통해서 무게가 다른 두 물체가 동시에 지면에 도달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 뜨거운 것이 더 무겁다? - 열 질량 이론 

온도가 올라가면 대부분의 물체는 부피가 늘어난다. 이를 열팽창이라고 하는데 부피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도 함께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이론이다. 온도가 올라가면 ‘열(caloric)’이라고 하는 입자가 물체 속으로 들어가서 부피와 무게를 증가시킨다. 여기서 열 입자는 유체와 같은 물질로, 탄성을 가지며 일반 물질에 부착돼 있다고 생각했다. 

17세기 과학자들은 열 입자의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 정밀하고 체계적인 실험을 수행했다. 하나는 뜨겁고 다른 하나는 차가운 상태인 똑같은 물체를 천칭 양쪽에 올려놓고 무게 차이를 측정했다. 온도를 변화시키면서 실험을 반복했지만 온도 차이에 따른 무게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별해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성공적인 실험결과를 얻지 못한 이유를 저울의 정밀도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열 입자가 존재하는 한 뜨거운 것이 더 무거워야 한다고 믿었다. 

● 열에도 관성이 있다? - 열 관성의 법칙 

관성의 법칙(뉴턴의 제1법칙)에 의하면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해서 등속운동을 하려고 한다. 이것은 질량에 관한 관성의 법칙인데 열 흐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흐르지 않을 때는 열이 관성에 의해 물체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 일단 흐르기 시작하면 마치 봇물이 터지듯 계속 흐르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경험에 의하면 뜨거운 물체에 살짝 손을 대면 처음에는 그리 뜨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열이 물체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을 꾹 누른 채 한참을 접촉하고 있으면 점점 뜨겁게 느껴진다. 열이 한번 흐르기 시작하면 관성에 의해 계속해서 흐르기 때문이다. 식당주인이 건네주는 뜨거운 밥공기를 손에 쥐고 생각해 봄 직한 법칙이다. 

● 속도가 빠르면 가벼워진다? - 속도에 의한 무게 저감효과 

빠르게 날아다니는 것들은 대개 가벼워 보인다. 하늘을 나는 새나 비행기가 그렇다. 무게가 가벼워야 잘 날 수 있고, 반대로 빨리 날수록 가벼워진다. 이러한 현상은 속도에 의한 무게 저감효과에 의한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활용하며 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끊어진 교량을 통과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빨리 지나가면 가벼워져서 바닥에 무게를 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앞에서 설명한 낙하속도 질량 비례법칙에 따라 천천히 낙하하므로 짧은 시간에 그대로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속도가 무한대가 되면 무게는 제로가 되고 따라서 낙하속도도 제로가 된다. 걸어갈 때도 마찬가지다. 축지법과 확지법을 쓰는 도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수면 위를 최대한 빨리 걸어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왼쪽 발이 빠지기 전에 오른쪽 발을 내딛고, 오른쪽 발이 빠지기 전에 왼쪽 발을 내딛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는 속도가 빨라지면 질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 속도가 빠르면 차가워진다? - 고속의 냉각효과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물체의 운동에너지(kinetic energy)는 질량과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물체가 가지고 있는 전체 에너지는 보존돼야 하므로 운동에너지가 커지면 다른 에너지가 작아져야 한다. 즉, 속도가 빨라지면 운동에너지가 커지고 그만큼 열에너지가 작아져야 한다는 이론이다. 

열에너지가 작아진다는 것은 온도가 내려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속도가 빨라지면 온도가 내려가는 냉각효과가 발생한다. 일상에서 바람이 세게 불면 온도가 낮아져 시원한 것을 느끼고 빠른 물체가 지나가면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또 고속 주행하는 자동차 표면이나 하늘을 나는 비행기 동체 표면의 온도가 상당히 낮아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런 효과를 공학적으로 이용해 냉동기나 에어컨을 만들었다는 보고는 없다. 

여기서 밝힌 이론들은 사실이 아니니 행여나 오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는 과학 이론을 접할 때 너무 진지하고 엄숙하게 생각하거나 내용을 받아들이기에만 급급한 경향이 있다. 말도 되지 않는 엉뚱한 과학이론이지만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잘 정립된 이론을 받아들일 때 보다 많은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한화택 국민대학교 기계시스템공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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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설이 되면 가족이나 친척들과 함께 둘러앉아 윷놀이 한판을 벌리곤 한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쉽게 즐길 수 있는 윷놀이나 팽이치기, 연날리기 등의 민속놀이에도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단순히 명절 때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 위한 놀이를 넘어서서 사시사철 다양하면서도 과학을 적용한 조상들의 지혜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윷놀이는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삼국 시대 이전부터 행해오던 우리나라 전통 민속놀이로, 조상들이 집에서 기르던 동물들의 이름을 붙여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가리킨다. 또한 윷판에서 자리의 순서도 각 동물의 속력에 비유된 것이다. 머릿속에 해당 동물들이 뛰는 걸 떠올려보면 정말 그럴 듯하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윷놀이에 로또보다 재미있는 확률의 원리가 있다는 점이다. 윷을 던져서 나오는 확률을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 = 어떤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로 계산해보면 도와 걸이 4/16, 윷과 모가 1/16, 개가 6/16이 된다. 윷을 던졌을 때 개가 나올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다.

하지만 조상들은 여기에 윷의 앞면과 뒷면을 다르게 만드는 약간의 변수를 추가했다. 위의 통계는 윷의 앞과 뒤가 같다고 했을 때, 즉 1/2로 가정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곡면인 부분을 앞이라고 하고 평면인 부분을 뒤라고 보면 확률은 달라진다. 고려대학교 허명회 교수는 윷의 곡면이 완전한 반원이 아니라는 점을 바탕으로 윷의 무게중심에 따른 회전운동을 계산하여 새로운 확률 결과를 내놓았다. 곡면이 위로 나올 확률과 평면이 위로 나올 확률이 4:6이고, 모-도-윷-개-걸의 순서로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결과가 완벽하게 정확한 확률 결과라고는 아직 단정 지을 수 없다. 만약 윷놀이를 할 때의 바닥, 예를 들면 멍석이나 땅바닥 등이 평평하지 않다거나 그로 인한 운동 방향의 변화 등을 고려하여 연구한다면 다른 확률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설날뿐만 아니라 겨울철 동안 아이들의 놀거리인 팽이치기에도 과학이 있다. 18~19세기에 생긴 팽이라는 말은 핑핑 돈다는 말에 그 유래가 있다. 지금은 비교적 많이 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옛날에는 많은 아이들이 나무로 팽이나 썰매를 만들어 강가, 논바닥 등의 얼음 위에서 여가를 보냈다. 팽이채는 50cm 정도의 얇은 나무 끝에 실로 노끈을 만들어 묶었고, 팽이를 칠 때 감으면서 세게 돌릴 수 있도록 팽이채의 노끈 끝은 느슨하게 풀어놓았다. 팽이치기를 할 때는 팽이를 멈추지 않도록 쉴 새 없이 돌리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팽이를 오래 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팽이에는 정지하고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고 있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하는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다. 둥근 물체가 축을 중심으로 회전운동을 하므로 회전 관성을 가지는 팽이는 무겁고 단단한 재질이 관성이 크기 때문에 다른 나무보다 소나무나 박달나무로 만들었다. 돌던 팽이가 어느 순간에는 공기저항과 바닥면과의 마찰력으로 인해 멈추게 되므로 아이들은 팽이의 표면을 잘 다듬어서 공기저항을 덜 받게 한다. 또한 얼음 위에서 팽이를 돌리면 바닥면과의 마찰이 적어지기 때문에 사계절 모두 팽이치기를 하지만 유난히 겨울에 아이들이 즐겨 한다.

겨울철 강가나 논두렁에서 바람을 이용해 날리는 연날리기도 빼놓을 수 없다. 원래는 대보름에 액을 멀리 보낸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제는 바람이 부는 날이면 쉽게 볼 수 있다. 연날리기는 한지와 대나무로 가볍게 연을 만들고 얼레에 감겨 있는 실을 조절해서 높낮이를 조종하는 놀이로 놀이의 방법은 쉽지만 잘 날리기가 그다지 쉽지 않다.

연날리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연의 윗면과 아랫면을 바람이 동시에 지날 때 윗면을 흐르는 바람의 속도가 빨라지면 압력이 감소하는 원리를 이해하면 쉽다. 이것을 베르누이의 정리라고 하는데, 이때 연의 윗면에 작용하는 압력이 아랫면에 작용하는 압력보다 작기 때문에 연이 위로 올라가게 된다. 따라서 연을 잘 날리려면 연의 윗면을 아랫면보다 앞으로 기울여서 들고 날리고, 양력과 항력을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 연이 위로 떠오르려고 하는 힘이 양력이고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뒤로 진행하려고 하는 힘이 항력이다. 실을 감으면 양력이 생겨 위로 뜨고 실을 풀면 항력이 생겨 뒤로 진행하므로 이러한 힘의 성질을 가지고 조종하면 된다.

이렇듯 우리 전통 민속놀이에는 재미와 동시에 과학이 숨 쉬고 있다. 이번 설에 종일 TV 프로그램에 빠져 있기보다는 민속놀이를 통해 창의력과 과학적 사고를 높여보는 것은 어떨까.

글 : 이상화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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