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4.28 판목? 철갑? 거북선의 정체는?! (1)
  2. 2010.07.26 이순신이 4D로 부활… ‘충무공이야기’로 오라 (1)

판목? 철갑? 거북선의 정체는?!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인류 역사 최초로 천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대규모 전쟁이자, 3천7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제2차 세계 대전과 함께 유럽인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뼈아픈 사건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전쟁 두 가지를 묻는다면 6.25 한국전쟁 그리고 임진왜란을 꼽을 것이다. 올해로 발발 420주년을 맞은 임진왜란은 아주 오래 전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나 일상에서 여전히 반복적으로 이야기되는 비극적인 기억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의 국토는 황폐화되었지만 왜군에게 나라를 넘겨주지 않았던 것은 우리에게 이순신과 거북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영웅이라는 뜻의 ‘성웅’ 호칭으로 불리는 이순신은 임진왜란을 16년 앞둔 1576년부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강직한 성품을 못마땅하게 여긴 대신들의 반대로 인해 좌천과 백의종군을 반복했다.

다행히도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인 1591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올라 전쟁을 대비할 수 있었다. 이순신의 가장 큰 업적은 여러 차례의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왜군의 보급로와 지원 병력 이동을 차단한 것이다. 옥포해전, 사천해전, 한산대첩, 안골포해전, 부산포해전, 노량대첩 등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내내 이어진 전투에서 한 번도 승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이순신 고유의 전술을 사용하는 데 핵심이 된 것은 조선의 주력 함선인 판옥선과 각종 총통이 쏘아대는 화약 무기였지만 전선의 맨 앞에는 ‘거북선’이 섰다. 거북이처럼 생겨서 이러한 이름을 받았으며 적진을 뚫고 들어가 교란을 시키는 데 유용했다. 임진왜란을 직접 겪은 이분(李芬, 이순신의 조카)은 ‘이순신행록(李舜臣行錄)’을 통해 거북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남겼다.

“위에는 판자를 덮고 판자 위에 십자 모양의 작은 길을 내어서 사람들이 위로 다닐 수 있게 했다. 나머지는 모두 칼과 송곳을 꽂아서 사방으로 발붙일 곳이 없었다. 앞에는 용머리를 만들고 입에는 총구멍을 만들고 뒤에는 거북꼬리를 만들었다. 모양이 거북의 모습과 같아서 이름을?귀선(龜船) 즉 거북선이라 했다.”

▲조선시대 ‘이충무공전서’ 中 거북선 그림. 출처:위키피디아

 

흔히들 이순신이 거북선을 발명한 것처럼 전해지고 있지만 첫 기록은 그보다 200년 앞선 ‘조선왕조실록’이다. 1413년 태종 13년 음력 2월 5일 부분에 이렇게 적혀 있다. “임금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 여기서 왜선은 실제 일본의 배가 아니라 훈련을 위해 적군의 배처럼 꾸며놓은 것을 가리킨다.

2년이 지난 1415년 태종 15년 음력 7월 16일 좌대언 탁신이 올린 상소를 기록한 부분에 거북선에 관한 내용이 다시 등장한다. “거북선의 방식은 많은 적과 충돌해도 해치지 못하니 승리를 위한 좋은 계책이라 하겠습니다.”

조선을 세운 때가 1392년이니 건국 초기부터 거북선으로 해상전에 대비했던 셈이다. 조선의 기록에 처음 등장했으니 좀 더 자세히 설명해야 정상이지만 아쉽게도 짤막한 언급이 전부다. 이 때문에 고려 시대에 거북선이 이미 완성되어 실전에 쓰이고 있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거북선에 대한 이야기는 180년 동안 사라져 있다가 ‘난중일기’에 다시 등장한다. 이순신이 직접 쓴 난중일기는 전쟁에 참가한 지휘관이 거의 매일 밤마다 자세한 내용을 직접 써내려간 세계 유일의 기록이다. 이러한 이유로 2013년 6월에는 유네스코 선정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거북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고 “거북선의 돛에 사용할 베 29필을 받았다”, “거북선에서 대포 쏘는 것을 시험했다”, “거북선의 지현자포를 쏴보았다” 정도만 기록되어 있다.

거북선이 실제로 존재했고 임진왜란에서 빛나는 성과를 이뤄낸 것만은 분명하지만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윗부분을 덮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철갑’에 관한 고증이다. 고성, 남해, 여수, 진해, 통영 등 우리나라 곳곳에 복원된 거북선은 쇠로 된 판을 지붕에 촘촘히 얹은 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거북선이 철갑선이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그저 두터운 보호판을 두른 ‘장갑선’이라고만 전해진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수정편의 1592년 5월 1일 부분에는 “배 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 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열십자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이나 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고 되어 있을 뿐 철갑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200년 가까이 지난 1795년에 펴낸 ‘이충무공전서’는 거북선의 크기와 구조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남겼다. 하지만 “창이 달린 벽체의 좌우에서 안쪽으로 각각 11장의 널판을 고기의 비늘처럼 겹쳐서 올려 덮었다”고만 되어 있을 뿐 철갑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거북선을 철갑선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1882년 윌리엄 그리피스(William Griffis)가 펴낸 ‘은둔의 나라 한국(Corea The Hermit Nation)’에는 “금속으로 감싼 배”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1899년 잡지 ‘하퍼스 뉴 먼슬리 매거진(Harper’s New Monthly Magazine)’은 “철판으로 감싼 거북배”를 소개한 선교사 호머 헐버트의 글을 실었다. 1929년에는 영국의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이 거북선을 “세계 최초의 철갑선”으로 소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895년 유길준이 ‘서유견문’을 통해 “거북선이 천하에서 가장 먼저 만든 철갑선”이라고 주장했다.

이후로도 거북선이 단순한 장갑선이었는지 철갑선이었는지에 대한 논쟁이 100년 넘게 계속되어 왔다. 철갑선이라는 쪽에서는 기름을 붓고 불화살을 쏘는 적의 공격을 막아내려면 나무로 만든 목선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조선시대 성문은 나무판 위에 얇은 쇠판을 붙여 방어를 했으므로 거북선의 지붕도 철갑을 둘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방식의 철갑을 두른 목선을 만든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했더니 물에 띄워도 가라앉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철갑선이 아니라는 쪽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장학근 전 해군사관학교 교수의 논문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떠한 기록에도 거북선이 철갑을 둘렀다는 이야기가 없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왜장 도노오카 진자에몬(外岡 甚左衛門)은 회고록 ‘고려선전기’에서 “장님배(거북선에 대한 왜의 별칭)는 전체를 철로 요해(要害, 전쟁에서, 자기편에는 꼭 필요하면서도 적에게는 해로운 곳)했다”고 해서 거의 유일한 문헌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요해 즉 방어망을 구축한 것이 철판을 두른 것인지 칼이나 창을 꼽았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신동원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근대에 들어 한반도를 침탈하려는 일본의 야망이 커지면서 임진왜란의 잇따른 패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일부러 거북선이 철갑선이었다고 부풀렸다고 분석했다. 유길준도 일본에서 ‘정한위략’이라는 군국주의 서적을 보고 철갑선이라 주장했다는 추측이다. 단재 신채호도 한때 거북선이 철갑선이라 주장했지만 후일 ‘조선상고사’에서는 일본의 계략을 깨닫고 철갑선의 존재를 부정했다. 문중양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도 식민사관 때문에 거북선을 철갑선으로 둔갑시켰다고 보았다.

아직까지 거북선의 증거가 될 만한 유물이 발굴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다. 철갑을 둘렀다면 지금까지도 지붕 조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나무로만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파괴되어도 침몰하지 않고 물에 떠 있었고 결국 진흙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1989년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충무공 해저유물 발굴단’이 창설되어 남해 연안을 조사했지만 철갑선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거북선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었는지에 대한 논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조상들의 뛰어난 기술을 칭송하기 위해 철갑선이라 불렀고, 일본은 한반도를 침략하려는 논리를 구축하기 위해 철갑을 강조했다.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반응 이외에 과학적인 접근 방법도 필요하지 않을까.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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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오.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必生則死, 必死則生).”

서울시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지하 2층에서 이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 것 같아 기억을 더듬어보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언 중 하나다. 그런데 세종문화회관에서 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일까? 이순신 장군에 관한 전시 공간, ‘충무공이야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충무공이야기는 2010년 4월 28일 문을 열어 다녀간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은 알아도 근처에 이런 전시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일반 전시관과 달리 최첨단 매체를 활용해 관람객들을 조선시대 임진왜란 시기로 초대하는 전시공간을 소개한다.

● “필생즉사, 필사즉생”… 4D 체험관에서 만나는 명량해전

이곳은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인간적 면모, 전쟁 이야기를 비롯한 7개의 체험 전시장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4D 체험관’. 영상을 보고 들을 뿐만 아니라 촉각과 후각까지 자극하는 장치를 마련해 관람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첨단 체험관이다.

4D 체험관에서 상영되는 영상은 판옥선을 타고 명량해전에 참가하는 내용이다. 1597년 9월, 명량해협(울돌목)에서 전투를 앞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3척의 전선을 가지고 일본 수군이 이끄는 133척의 함대와 맞섰다.

10분의 1의 전력으로 전투에 나서는 그와 조선의 수군은 죽을 각오로 전투에 임했고, 울돌목의 거센 조류를 이용해 대승을 거뒀다. 이 전투로 일본 수군은 전선 31척을 잃었지만, 조선 수군의 전선은 모두 무사했고 사망자도 2명에 그쳤다. 다윗이 골리앗과 벌인 전투에서 완벽하게 이긴 셈이다.

4D 체험관에 설치된 의자는 영상에 맞춰 앞뒤, 좌우로 흔들리는 진동 효과를 줄 수 있고, 공기를 내뿜을 수도 있다. 따라서 관객들은 자신의 귀밑이나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이순신 장군처럼 파도에 출렁거리는 판옥선을 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의자에서 튀어나오는 물과 등받이 맨 위쪽에 마련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전투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현재 이 체험관은 공사를 마치고 시운전에 들어간 상태인데, 2010년 8월 중순이 되면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 앞과 옆에서 동시에 영상이 나온다?… 3면 복합영상



<3면 복합영상관은 정면과 양 측면에 스크린이 설치돼 관람객들이 입체적으로 영상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전시관 북측에 자리 잡은 3면 복합영상관도 인기다. 여기에서 상영되는 영상에는 임진왜란의 발생부터 이후까지의 역사적 사건을 담은 스토리가 펼쳐진다. 정면에 있는 거대한 스크린에는 주요 사건이 전개되고, 양 측면 스크린에는 조선과 일본의 장수나 각 군의 군사 규모 같은 정보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술을 역동적인 애니메이션과 영상으로 제작한 3면 복합영상의 원리는 간단하다. 관람객이 이 상영관에 들어서면 센서가 반응해 30초 후에 영상이 시작된다. 이때 정면의 스크린을 향해 3개의 빔 프로젝터가 각각 미리 계산된 영상을 쏘고, 양 측면에도 빔 프로젝터가 설치돼 준비된 영상을 쏘는 것이다.

3개의 빔 프로젝터가 영상을 쏘기 때문에 넓은 바다에서 전개되는 전투상황을 더 실감나게 볼 수 있고, 고개를 돌려 측면에 제시된 정보를 볼 수 있어 입체적인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3면의 복합영상이 꺼지면 정면의 스크린이 양쪽으로 분리된다. 이때 거북선 모형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관람객은 함미부터 볼 수 있다.


<거북선 모형, 오른쪽 위 사진은 내부에 설치된 모형이고, 오른쪽 아래는 3면 복합영상관과 연결된 함미 부분이다.>

중앙에 전시된 이 거북선 모형은 해군사관학교가 복원한 거북선을 모델로 자문 위원들의 고증을 거쳐 완성됐다. 실제 크기를 55%로 줄여서 재현된 이 모형은 관람객이 직접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졌다. 늘 겉모습만 봤던 거북선 내부 구조를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축소 인형의 모습을 보며 예전 해군의 모습도 짐작할 수 있다.

● 조선시대 화포와 총통을 직접 다뤄볼까?

노 젓기를 체험해보거나 판옥선을 조립해보는 코너는 물론, 조선시대 화포와 총통을 쏘는 게임도 마련돼 있다. 기존의 전시관에서는 유리로 관을 만들고, 그 안에 무기 같은 유물을 전시했다면 이곳에서는 실물 모형을 마련해 직접 다룰 수 있게 했다.

화포와 총통 체험은 정면 스크린과 화포와 총통 각각 1개로 이뤄진 간단한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화포와 총통 중 하나를 선택해 게임 시작을 누른 뒤 스크린 위로 지나가는 적선을 명중시키면 되는 식으로 구성됐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화포와 총통 체험, 노 젓기 체험, 판옥선 조립 체험, 이순신 장군에 얼굴 합성 체험이다.>

이 밖에도 관람객 본인의 사진을 찍어 이순신 장군의 사진에 합성해 보는 체험처럼 다양한 형태의 즐길 거리가 마련됐다. 이런 매력적인 요소 덕분에 충무공이야기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4D 체험관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8월 중순이 되면 그 숫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백 번을 듣는 것보다 그에 대한 정보를 입체적으로 전시한 공간을 찾아 한 번 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4D 체험관이 갖춰지는 8월경에는 첨단전시관, 충무공이야기를 찾아 오감으로 이순신 장군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 충무공이야기는 세종문화회관이 운영하고 있으며 매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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