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공짜 와이파이 쓰다 내 정보 공짜 된다!


태연,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엄마 고대기로 앞머리 볼륨을 팍팍 살리고 립글로스를 바른 데다,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르는 모양새가 도저히 공부하러 도서관에 가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거기 딱 서! 무척이나 의심스러운 냄새가 스멀스멀 나는 데 말이다. 설마 도서관에 간다고 거짓말을 할 생각은 아니겠지?” 

“아빠, 촌스럽게 요즘 누가 도서관에서 공부해요. 요 앞 카페에서 애들이랑 공부하기로 했다고요. 분위기 좋지, 편하지, 따뜻하지, 주스도 맛나지, 공짜 와이파이도 팡팡 터지는 최적의 공부방 카페 말이에욧!” 

“최적의 PC방이 아니고? 그러지 말고 도서관에 가는 게 어떻겠냐. 팡팡 터지는 공짜 와이파이 좋아하다 네 휴대전화도 팡팡 털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된단 말이야.” 

“엥?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물론, 와이파이(Wi-Fi, Wireless Fidelity)는 아주 유용한 기술이야. 일정 범위, 그러니까 가정용은 20~30m 정도, 기업용은 100~200m 정도의 ‘와이파이존’ 안에만 들어가면 누구나 무선으로 공짜 인터넷을 맘껏 사용할 수 있으니 무척 편리하지. 카페나 백화점 같은 상업시설은 와이파이를 이용해 손님을 끌 수 있고, 또 요즘엔 공공기관에서도 와이파이를 많이 설치해서 국민의 정보격차를 해소하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단다. 2013년 전 세계의 와이파이존은 인구 150명당 한 곳이었지만, 2018년에는 20명당 한 곳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있어. 그뿐만 아니라 데이터 전송속도도 요즘엔 초당 최고 7GB(Gigabyte)까지 빨라지고 있지.” 

“그러니까, 휴대전화 데이터를 쓰는 대신 카페에 가서 맘껏 와이파이를 쓰면 그게 바로 근검절약이란 얘기죠. 거기다 아빠 말씀대로 속도도 빠르고, 비밀번호도 필요 없고, 정말 편하잖아요! 그런데 대체 왜 조심하라는 말씀이세요?” 

“어허, 선현께서 이르길, 인생은 호사다마이며 새옹지마라 하지 않았더냐. 좋은 일에는 나쁜 일이 꼬이지 쉽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법! 그러니 심사숙고하고 유비무환 해야 한단 말이다.” 

“네? 호사다시마가 새마리 심사숙변…, 이게 무슨 말씀이신지…? 

“에고, 그러니까 와이파이가 좋은 만큼 나쁜 면도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거야. 와이파이는 하나의 무선공유기에 여러 사람의 IT 기기가 연계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누군가 나쁜 목적으로 공유기를 해킹해버리면 많은 사람의 개인정보가 몽땅 털릴 가능성이 크단다. 문자메시지나 통화기록은 물론이고 아이디와 비밀번호까지 도둑맞으면 금융사기를 당할 수도 있지. 또 휴대전화와 노트북 등에 들어있는 소중한 정보가 노출될 수도 있고 말이야. 한국인터넷진흥원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개방형 와이파이로 인한 개인정보침해신고가 매년 10만 건 이상 접수되고 있고, 작년에는 무려 16만 건 가까이 들어왔다고 하는구나. 

“후덜덜. 정말요? 그 좋은 와이파이를 안 쓸 수도 없고, 대체 어떡하면 좋아요?” 

“일단 무선공유기를 설치하는 쪽에서 먼저 신경을 써야 해. 업소 전화번호나 1234567과 같이 누구나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비밀번호는 피하고, 번호를 되도록 자주 바꿔주는 노력이 필요하지. 실제로 한 백신기업의 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 시내 와이파이 공유기의 70% 이상이 쉬운 암호나 낮은 수준의 보안체계를 갖고 있다고 하는구나. 또 공유기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최신 펌웨어를 신속하게 업데이트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해.” 

“그럼 와이파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조심하면 돼요?” 

“우선, 와이파이를 이용해 온라인 뱅킹을 하는 건 위험하니 가급적 삼가는 게 좋단다. 또 특정 와이파이에 한 번 접속하면 그 와이파이존에 갈 때마다 자동으로 인터넷이 잡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자동접속이 되지 않도록 휴대전화 네트워크 설정에서 와이파이를 꺼놓고 꼭 필요할 때만 켜서 쓰는 게 안전하지. 그리고 와이파이를 쓰고 있을 때 수상한 팝업창이 뜨거나 뭔가를 설치하라고 하면 가급적 따라하지 않는 게 좋단다. 

“휴, 공짜라는 생각에 무작정 와이파이만 잡히면 좋아했었는데, 이제 정말 조심해야겠어요. 참, 그럼 아빠는 도대체 왜 그렇게 되신 거예요?” 

“뭐가?” 

“빠른 속도로 시원해지는 아빠의 정수리 말이에요. 일명 대머리라고 하는 그 널찍한 공간은 왜 만들어지는 걸까요? 어른들이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고 하시던데, 공짜 와이파이를 그리 즐기지 않는 아빠의 대머리는 어인 연유인가요?” 

“야!!!”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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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비만을 부르는 가을 우울증

 

태연, 우수수 잎을 떨구는 공원의 나무들 사이에서 단박에 아빠를 찾아낸다. 푸짐한 몸집을 감싼 짙은 고동색 바바리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눈에 띈다. 

“아빠! 빨리 집으로 가요. 엄마가 당장 아빠 찾아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부끄러운 복장은 무언가요. 흡사, 바바리 입은 까똑 누렁강아지 이모티콘 같단 말이에요.” 

“싫다. 난 집에 가지 않겠어. 이제 나의 길을 가련다. My Way!”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빠가 아무리 바바리를 깃 세워 입고 바스락바스락 낙엽을 밟는다 해도, 엄마의 이상형인 그 프랑스 배우 알랭드롱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이상형이 아니라 이상한 형 같다고요.” 

“넌 모른다. 엄마도 몰라.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몰라요.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볼 때 남자의 마음도 쿵하고 함께 떨어진다는 것을. 낙엽이 신발에 밟혀 뭉그러질 때 남자의 심장도 부서진다는 것을.” 

“엄마가요, 아빠가 가을 어쩌구 이상한 얘기를 꺼내시면 그냥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말해 주라고 하셨어요.” 

“음, 틀린 말은 아니야. 계절성 우울증 즉, 계절성 정동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는 특정 계절에만 몸이 나른해지고, 기분이 저하되는 우울한 증상이란다. 정신과적인 질환을 앓아본 적 없는 멀쩡한 사람도 약 15% 정도는 가을과 겨울에 이런 우울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2~3% 정도는 계절성 정동장애라는 병명을 갖게 되지. 

“정말요? 대체 왜 그러는 건데요?”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계절에 따른 일조량의 변화 때문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단다. 밝은 빛을 많이 쬐면 뇌에서 세로토닌과 도파민같이 행복한 기분을 만드는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데,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확 줄어드니까 당연히 이런 호르몬 분비도 줄어들고, 우울해진다는 거지. 

“아, 그럼 계절성 정동장애는 주로 남자들이 걸리나 봐요? 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진 않아. 계절과 상관없이 여자에게서 더 많이 발생하고, 사춘기 후부터 증가해서 노년이 되면 발병률이 줄어든단다. 또 낮에 햇볕 쬘 기회가 적은 순환근무자들에게서 더 많이 발생하지. 그런데도 남자가 많이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뭐랄까, 가을과 함께 소멸되는 청춘의 생동감이 남자에게 더 치명적인 고통으로 다가오는 거랄까…” 

“그러니까 결론은, 여자가 더 우울한데 남자가 더 오버한다 그거잖아요. 암튼, 남자들은 다 애라니깐. 그런데 단지 조금 우울한 감정일 뿐이고 봄이 돼서 햇빛 쨍쨍해지면 다시 기분이 좋아질 텐데 무슨 걱정이에요?” 

“그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특히 우리같은 비만인들에게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보통의 우울증은 밥맛이 떨어지고 불면증이 오지만, 계절성 정동장애는 정 반대야. 식욕이 급증하고, 특히 달달한 간식에 집착하게 되며, 먹어도, 먹어도 심지어는 먹고 있어도 배가 고픈 증상에 시달린단 말이다. 거기다 잠에 관여하는 멜라토닌이 증가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무기력하고 졸려요. 폭식을 거듭하며 계속 잠을 잔다면 어떻게 되겠니. 당연히 비만인이 되겠지! 그리하여 내년 봄 햇빛이 쨍쨍해질 때 우울한 기분은 사라질지 모르나, 비대해진 몸매는 사라지지 않는 비극을 겪게 된단다.” 

“헐! 여태 들어본 병 가운데 가장 악독한 병이에욧! 계절성 정동장애는 대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이지요?” 

“일단 세로토닌이 잘 분비되도록 볕을 많이 쬐는 게 좋단다. 병원에서도 밝을 빛을 쪼여주는 광치료를 주로 하고 있지. 또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볕이 좋은 날 야외 운동을 하면 가장 좋겠지.” 

“아, 그래서 아빠도 햇볕을 쬐려고 공원에 나오신 거였구나. 그런데 엄마가 아빠를 모셔올 때, 꼭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 그게 뭔데?” 

“바바리코트 안쪽에 가득 품고 있을 초콜릿을 먼저 압수하라고 하셨어요. 계절성 정동장애 때문에 단것에 대한 욕망이 너무 커진 아빠가, 엄마한테 뺏기지 않고 혼자 초콜릿을 다 드시려고 몰래 공원에 나간 게 틀림없다고 하셨거든요. 그럼, 어디 한 번 검사해 볼까요?” 

태연, 아빠 코트를 확 열어젖힌다. 종류별로 쏟아지는 수십 개의 초콜릿! 

“헤헤, 딱 걸리셨네요. 엄마한테 눈감아 드리는 조건으로 반반 나누는 건 어떠실지…?”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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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독버섯은 무조건 화려하다?!

 


나무마다 탈색이라도 된 듯 잎에서 초록이 빠져나가고, 울긋불긋 새로운 색깔이 덧칠되는 계절. 새파란 하늘빛 하나만으로도 그림이 되는 계절. 바로 가을이다!

아름다운 가을을 만끽하려 산에 오르는 태연과 아빠 앞으로, 똑같은 꽃분홍 조끼에 꽃주홍 바지를 입고 똑같은 뽀글이 헤어스타일을 뽐내는 할머니 세 분이 보인다. 하얀 버섯무더기 앞에서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지 큰 소리로 대화중인 할머니들.

“이 무식한 할망구야. 이렇게 허여멀건 하게 생긴 독버섯이 있다는 얘기는 귓구멍 열리고 첨으로 들어보는구먼! 나처럼 화려하고 섹시하게 생겨야 독버섯이지. 우헬헬!”

“쿠헬헬. 팔십 할망구 주제에 섹시 같은 소리 하구 자빠졌네. 그래도 말은 똑바로 혔구먼. 참하게 생긴 버섯은 다 먹어도 되는 겨. 산으로 들로 버섯 따다 맥여감서 새끼를 일곱이나 키웠어도 배탈 한 번 난 적 없는 내 말을 믿으라고.”

“아니랑께. 뉴스도 안 보는겨? 얌전한 독버섯이 많으니까 암것도 뜯어먹지 말라고 잘생긴 앵커가 그리 신신당부 하더랑께, 이 무식한 할망구들아. 케케케!”

말끝마다 웃음이 따라붙는, 어쩐지 무척이나 재미있게 들리는 할머니들의 논쟁을 옆에서 듣던 아빠. 기어이 참지 못하고 참견을 시작한다.

“잠깐만! 그건 케케케 웃는 할머니 말씀이 맞아요. 알록달록 화려하지만 않으면 다 먹는 버섯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버섯 1,680여 종 가운데 무려 10% 정도가 독버섯이고, 그중에는 미친 듯이 소박하게 생긴 것들도 수두룩하거든요. 최근 4년 사이에 야생 독버섯을 먹고 병원에 실려 간 환자가 74명이나 되고, 이 가운데 6명은 목숨을 잃으셨어요. 그러니까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뭔 소리여. 우리가 느타리버섯, 싸리버섯이랑 독버섯도 구분 못할까봐서? 우헬헬.”

“자, 잘 생각해 보세요. 똑같은 옷에 똑같은 머리를 하신 할머니들을 보면 도저히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되거든요. 아마 바깥어른들도 구분하기 힘드실 걸요? 그런 것처럼 독버섯도 완벽하게 가려내기 어렵다는 거예요.

“워매~, 어쩜 그리 귀에 쏙 들어오게 비유를 잘 하는가? 확 믿음 생기게 말여.”

“독버섯에 관한 잘못된 상식은 의외로 많아요. 색깔과 모양이 화려하다, 곤충이나 벌레가 먹은 흔적이 없다, 은수저를 넣었을 때 수저 색깔이 검게 변한다, 세로로 잘 찢어지지 않는다, 대에 띠가 없다, 등등이 있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색이 수수하고 곤충이 파먹은 흔적이 있으며 은수저에 넣어도 전혀 변화가 없는 독버섯도 적잖이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느타리버섯과 독버섯인 화경버섯, 그리고 싸리버섯과에 독성이 강한 노랑싸리버섯은 전문가가 아닌 이상 도저히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흡사하게 생겼답니다.”

“정말이여? 푹 익혀 먹어도 안되남? 옛날부터, 들기름에 익혀먹거나 가지랑 같이 삶아먹으면 괜찮다구 그렸는디. 것도 안 돼?”

“그건 그냥 하는 얘기고요. 과학적으로는 전혀 근거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야생버섯이 까무러치게 드시고 싶다면, 약간의 힌트를 드릴게요. 느타리버섯처럼 생긴 것 중에 갓 표면에 암갈색의 인편(비늘 모양의 얇은 조각)이 있거나 자루 절단면 중앙에 암갈색 반점이 있는 것은 절대 드시면 안 되고요. 싸리버섯같이 생긴 것 중에는 가지 끝 색깔이 황색인 것, 그리고 송이버섯 같은 건 잘라봐서 잘린 부분 조직이 갈색으로 변하면 독버섯이니까 드시면 안 돼요.

“아이고, 복합햐. 그걸 어떻게 다 외워!”

“그러니까 가급적 야생버섯은 피하시라고요. 잠깐 배 아프고 마는 독버섯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현기증, 두통, 구토, 복통, 설사 같은 증상을 넘어 심한 경우에는 간과 신장세포가 파괴돼 신부전증이나 급성신부전증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거든요.

“만약에라도 모르고 먹었으면 어떡하는겨?”

“일단 빨리 119에 전화하신 다음에, 손가락을 입 안에 넣어 토하셔야 해요. 또 병원에 갈 때는 먹다 남은 독버섯을 꼭 갖고 가세요. 버섯에 따라 독소물질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버섯인지 아는 게 중요하거든요.”

“아이고, 덕분에 오늘 참 많이 배웠구먼. 근데 자네는 누군겨? 생긴 것만 보면 딱, 퍼진 표고버섯인디, 얼굴이 너부데데하고 거무튀튀한 것이 말여. 우헬헬.”

“에, 저로 말씀드리면…. 과학자라고나….”

그러나 바로 이때, 아빠 옆으로 중절모를 쓴 멋쟁이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간다. 세 할머니, 자석에라도 이끌리듯 할아버지 뒤를 바짝 따라붙는다. 끝끝내 자기소개를 하지 못한 표고버섯 닮은 아빠의 머리 위로, 싸리버섯 닮은 낙엽이 한 장 떨어진다.

“쯔쯔. 할아버지한테도 외모가 밀린 거예요? 퍼진 표고버섯 아빠, 실망은 접어두고 등산이나 하자고요.”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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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체했을 때 바늘로 손가락 따면 낫는다?!

대식가 태연에게는 일 년에 정확히 다섯 번의 경축일이 있다.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그리고 설과 추석. 이유는 단 하나, 맛있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 모조리! 그것도 잔소리 한번 듣지 않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명절에 할머니 댁에 갈 때는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칭찬까지 듣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곤 한다.

“아이고, 잘 묵네. 구여운 내 강아지. 송편두 먹구, 부침개두 먹구, 갈비두 먹구, 불고기두 먹구, 오구오구”

“네! 할머니 분부대로 따를게요~. 아빠보다 훨씬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위대한, 그러니까 위(胃)가 엄청 대(大)한 손녀가 돼서, 청출어람이 무슨 뜻인지 꼭 증명해 보일게요!”

그러나 강철도 녹여낼 듯 건강하던 태연의 특 A급 위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급체를 한 것! 체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할머니는 뾰족한 바늘을 불로 소독하고 바람처럼 달려와 태연의 엄지손가락을 잡는다.

“하…, 할머니. 왜 이러세요! 제발 그 바늘 내려놓아 주세요! 체했을 때 바늘로 손가락 끝을 따면 낫는다는 건, 말짱 다 거짓말이라고요. 그치 아빠?”

“뭐, 현대의학 입장에서 보면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있지. 현대의학에서는 정식 질환명도 없는 병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한국사람 치고 체했다는 말이나 증상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걸?”

“암만! 내 아들 똑 소리 나게 말 한번 잘 허는구먼. 글고 체하믄 손가락을 따야 헌다는 것두 한국 사람이면 다 아는 얘기여.”

“악, 안돼요!”

“그럼, 되는지 안 되는지 차근차근 짚어볼까? ‘체증’, 그러니까 체한 증상은 음식을 급히 많이 먹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등의 이유로, 위의 운동력이 떨어지고 위액 분비가 잘 안 돼서 생기는 증상이란다. 그러고 보면 만날 허겁지겁 먹는 네가 여태 체한 적 없이 살았다는 것도 기적이야. 암튼, 체하면 명치 부위가 탁 막히면서 손발이 싸늘해지고, 속이 답답하면서 트림과 매슥거림이 계속되지. 복통이나 두통, 어지럼증과 구역질 같은 증상도 동반되고 말이야.”

“네, 딱 그 증상이에요.”

한의학 입장에서 보면, 이럴 때 손가락 끝을 따는 건 아주 현명한 응급처치란다. 위가 갑자기 마비돼 기혈이 막혔을 때 엄지손가락 손톱 밑 바깥쪽에 있는 혈자리를 침이나 바늘로 찔러서 검은 피를 내면, 막혔던 기가 뻥 뚫려 멈춰 있던 위가 다시 정상적인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논리지.”

“그래도 바늘은 무서운데….”

“그래. 현대의학에서는 단지 심리적인 효과일 뿐 실제로 치료가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단다. 오히려 소독이 잘 안 된 바늘로 손가락을 찔렀다가는 각종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손가락을 따는 대신 병원에 가라는 거야.”

“병원도 싫어요!”

“어떤 게 맞다 틀리다 할 수는 없지만, 다만 한 가지 정확한 건 있단다. 체했을 때 가장 좋은 치료법은 ‘한두 끼쯤 굶기’라는 거지. 굶으면서 따듯한 보리차만 조금씩 마시다가 좀 나아지면 소화가 잘 되는 죽으로 속을 달래는 게 최고야.”

“그,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산해진미가 가득한 이 명절에, 절 보고 요염하게 손짓하는 저 갈비들을 외면하고 굶으라고요?!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어요?”

“한 번에 확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체했을 때 먹으면 좋은 음식들은 있단다. 일단 매실은 소화액 분비를 촉진시켜 체증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고, 무에는 소화에 도움이 되는 디아스타아제와 페루오키시타제라는 성분이 많이 들어있어서 옛날부터 천연소화제로 불리기까지 했으니 당연히 도움이 될 거야. 또 양배추도 위의 점막을 강화하고 기능을 회복시킨다고 알려져 있지.

“그러니까 아빠 얘기는, 병원에 가거나, 맛없는 매실이나 무, 양배추를 듬뿍 먹거나, 아니면 쫄쫄 굶어라…, 이 말씀이신 거네요?”

“그렇지.”

태연, 달달한 냄새를 가득 풍기는 갈비와 할머니가 가져온 바늘을 번갈아 보며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하, 할머니. 그러니까 손가락만 따면 진짜 쑥 내려가요? 그러니까 고기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암만, 암만!”

태연, 결심한 듯 바들바들 떨며 할머니에게 손가락을 맡긴다. 잠시 후, 십 리 밖에서 길 가던 사람도 깜짝 놀랄 정도로 우렁찬 “악!”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진다.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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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지만 다른 감기와 냉방병

 

태연과 아빠 엄마, 오늘도 아침밥을 먹자마자 은행 문을 열고 들어선다. 이름 하여 뱅크피서를 위해서다. 하루 종일 쌩쌩 돌아가는 에어컨 아래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책도 보고 옥수수도 뜯으며 더위를 피하는 뱅크피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최강 넉살을 가진 아빠는, 몹시 염치없는 이 상황에서도 경비아저씨와 절친까지 맺었다. 

“그러니까 이런 증상이라는 거지? 두통이나 피로감, 어지러움과 함께 소화불량, 복부팽만감, 그리고 복통과 설사가 수시로 반복되고, 기억력도 점점 떨어지는 데다, 집중도 안 되고, 어떨 때는 팔다리가 욱신욱신 쑤시면서 허리까지 아프다 이거잖아.” 

“헐! 족집게셔. 어떻게 딱딱 알아맞히나 그래?” 

“감기인 듯 감기 아닌 감기 같은 증상이지? 낮에는 심하다가 저녁에 집에 가면 덜하고.” 

“흐헐! 나보다 나를 더 잘 알다니, 혹시 그동안 스토킹 한 거 아닌가?” 

“김경비는 어쩜, 오버하는 것까지 딱 내 스타일이이란 말이야. 허허. 암튼, 지금까지 얘기한 증상들은 몽땅 냉방병에 관한 걸세. 이렇게 추운 데서 일하려니 냉방병을 피하기 어려웠겠지.” 

“역시, 친구가 과학자니까 참 좋구먼. 그런데 시원한 데 있으면 몸도 정신도 더 짱짱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짱짱해지기는커녕 몽롱해지는 이런 병은 도대체 왜 생기는 거야?” 

안과 밖의 온도가 5~8°C 이상 벌어지는 곳에서 오랫동안 있으면 말초혈관이 빠르게 수축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요. 뇌로 가는 혈류량이 줄어드니까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기운 없으면서 졸리게 되지. 또 위장으로 가는 혈류량도 줄어 소화기 쪽도 영 시원찮고 말이야. 거기다 자율신경계 기능에도 변화가 생겨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여성의 경우 생리가 불규칙해지기도 해요. 근육이 뻐근하게 쑤실 때도 잦고.” 

“아, 이제야 싹 다 이해가 되는구먼. 남들은 시원한 데서 일한다고 날 부러워하지만, 냉방병이라는 슬픈 직업병을 앓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네밖에 없을 걸세. 그런데 대체 우리 몸은 온도 차이에 왜 이리 예민한 건가?” 

“우리 몸은 빠른 변화를 아주 싫어한다네. 세포 하나하나를 재정비해가며 변화에 적응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거든. 환절기만 되면 감기 같은 각종 감염병이 늘어나는 이유도, 인체가 빠른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면역력이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라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오는 한 달 동안의 계절변화에도 쩔쩔매는 데, 하루에도 몇 번씩 5~8°C씩 온도가 오락가락하면 몸이 버텨내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사람은 이래서 배워야 하는 걸세. 난 그런 것도 모르고 감기인 줄 알고 며칠째 종합감기약만 열심히 챙겨먹었지 뭔가.” 

“많은 사람이 감기와 냉방병을 헷갈리는데, 이걸 구분하는 팁을 하나 줌세. 기침이나 가래 같은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감기, 없으면 냉방병일 가능성이 높고. 그리고 냉방을 하지 않을 때 증상이 호전되면 냉방병, 그것과 상관없이 계속 증상이 이어지면 십중팔구 감기라네. 알겠나?” 

“오호, 아주 명쾌하구만! 그럼, 끝으로 하나만 더 물어봄세. 대체 이 냉방병은 어떻게 하면 고칠 수가 있나?” 

“음, 묘약이 딱 하나 있긴 하지. 에어컨을 끄고 하루 이틀만 지나면 금방 몸이 좋아진다네.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마사지를 해서 혈액순환을 도와주면 더 빨리 호전되고 말이야. 또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지 말고 가끔 20~30분씩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것도 냉방병을 예방하는 훌륭한 방법이지.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자네에겐 그림의 떡일 테니, 긴팔 옷을 입거나 목에 작은 수건 같은 걸 둘러서 체온이 너무 떨어지지 않게 막는 게 최선일 것 같구먼.” 

“음, 그런데 미안하지만, 사실 내 병은 냉방병이 아니네.” 

“아니 여태까지 듣고는, 갑자기 무슨 냉방병 걸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사실, 나의 두통이나 근육통, 어지러움, 소화불량, 복통, 설사는 실내외 기온 차 때문이 아니라네. 달랑 의자 10개가 전부인 작은 은행지점에 자네 가족이 벌써 사흘째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을 치고 있다는 게 내 병의 근원이야. 위에서는 어떻게 좀 해보라고 자꾸만 나를 닦달하고, 그렇다고 대놓고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하도 스트레스가 쌓여 온몸 여기저기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네. 이보게 친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만 나가주면 안 되겠나? 친구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말일세. 흑흑.” 

“난 또 뭐라고. 성격이 왜 이리 급한가? 우물가서 숭늉 찾겠구먼. 허허. 조금만 더 참아보게, 나도 이제 휴가가 하루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참말로 뻔뻔하구먼. 벼룩도 갖고 있다는 그 낯짝이 왜 자네에게만 없는 것인가. 흑흑” 

“안 들린다, 안 들린다. 더 격렬하게 아무 말도 안 들린다.”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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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오~ 진실이시여! 리플리증후군


기말고사가 끝난 뒤로 태연의 일상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게으르다. 세수와 샤워는 물론 양치도 하지 않아 입에서 곰삭은 청국장 냄새가 나고, 방은 온갖 과자봉지들로 뒤덮인 쓰레기장에 가깝다. 

“방 좀 치우라고 했지! 바퀴벌레 사육이라도 할 참이냐, 어?” 

“아이, 왜 그러세요. 평균 90점 넘으면 무한자유를 주겠다고 하셨잖아요.” 

“그거야 뭐, 불가능할 줄 알고 약속한 거지. 암튼, 정말 90점 넘은 거 맞아? 만날 60점만 맞던 네가 고득점 딸로 거듭났다는 게 영 실감이 안 된단 말이야. 성적표는 언제 나오니?” 

그런데 ‘성적표’라는 단어에 순간 태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러더니 자꾸만 손으로 입과 코를 만지작대고, 한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하더니, 계속해서 자세를 바꿔 앉는다. 

“딱 걸렸어. 성적표 나올 때까지 게으르게 한 번 살아보려고 거짓말한 거였구나!” 

“헉, 점쟁이 빤쓰라도 빌려 입으신 거예요? 죄송해요. 실은 말숙이가 리플리증후군이라는 걸 알려줬는데, ‘나는 90점이다, 틀림없이 90점일 것이다’라고 계속 생각을 하면 정말 그렇게 믿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 해본 건데, 제 연기가 그렇게 형편없었어요?” 

“뭘 알려면 좀 제대로 알아라. 리플리증후군(Ripley Syndrome)은 ‘허구의 세계를 진짜로 믿어서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정신과적으로 보면 일종의 망상장애야. 성취욕은 아주 큰데 실제로 성취할 능력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열등감에 빠진 나머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고 거짓으로 만든 지위나 신분 등을 진짜로 믿어버리는 거지. 네가 한 단순 자기암시와 망상장애는 전혀 다른 거라고! 게다가 얼굴을 만지고 자세를 바꾸는 것은 네가 거짓말을 할 때 나오는 딱 그 몸짓이란 말이다. 누굴 속이려고 들어, 이 녀석아!” 

“어쨌거나 리플리증후군에 걸려도 거짓말을 하는 건 맞네요. 그냥 거짓말과 정확히 뭐가 다른 거예요?” 

“보통 거짓말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숨기거나 책임을 피하고 싶어서 하게 되는데, 거짓말이 나쁘다는 걸 본인도 잘 알기 때문에 죄책감이나 불안감을 느끼게 된단다. 그래서 심장도 벌렁벌렁 뛰고 자기도 모르게 아까 네가 했던 것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거지. 반면에 리플리증후군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진짜로 믿어버려서 죄책감 같은 감정이 거의 없어요. 얼마 전에 세계 최고의 명문인 하버드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에 동시 입학했다고 거짓말을 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학생도 자신이 진실을 말했다고 철저하게 믿고 있었다는구나. 리플리증후군인 거지.” 

“그 얘기는 저도 들었어요. 그게 리플리증후군이었구나. 근데 리플리가 무슨 뜻이에요?” 

“뜻이라기 보단 소설 속 인물 이름이야. 미국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955년 작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 나오는 인물인데, 호텔 종업원으로 가난하게 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재벌 2세 친구를 죽이고는 완벽하게 그 친구 행세를 하는 사람이지. 소설 속 리플리는 실제로 자기가 재벌 2세라고 철석같이 믿고 산단다. 이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리플리 같은 정신과적 증상에 관심이 집중됐고 ‘리플리증후군’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거지. 이후에도 리플리증후군을 소재로 한 영화는 계속 만들어졌는데 아빠와 비슷하게 생긴 ‘알랭 드롱’이 주연한 1960년 작 ‘태양은 가득히’나, 역시 아빠를 꼭 빼닮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2002년 작 ‘Catch Me If You Can’ 등이 그것이란다.” 

“만약 그들이 아빠를 닮지 않았다면 아빠는 거짓말쟁이일까요, 리플리증후군에 걸린 걸까요? 흠, 뜨끔 하는 표정을 보니 거짓말쟁이시군요. 암튼, 그럼 이 병은 어떻게 치료해야 해요?” 

“글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치료가 아주 어렵단다. 일단 현실을 인지하고 자신이 거짓말로 만들어 낸 허구의 존재처럼 대단하지도 멋있지도 않다는 걸 인정해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데, 그게 정말 쉽지 않다는 구나. 현실을 깨닫는 순간 엄청난 두려움과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대부분 다시 망상 속으로 도망가 버린다는 거야.” 

“휴, 좀 안쓰럽긴 하네요. 그럼 영 방법이 없는 거예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란다. 현실 속 자신도 충분히 소중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주변에서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주는 거야. 현실의 내가 맘에 든다면 굳이 허구 속으로 숨을 필요가 없을 테니까 자연히 치료가 되겠지.” 

“그럼 저도 치료해 주세요. 현실 속 60점도 충분히 훌륭한 점수라고 느낄 수 있도록 ‘60점이나 맞다니 태연이 넌 정말 대단해!’라고 칭찬을 해달란 말이에요. 그럼 저도 아빠의 외모가 현실 속에서도 매력만점이라고 말해 드릴게요. 헤헤. 이 정도면 완전 공정한 거래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 

“태연이, 너!!”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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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잘 걸리는 A형 간염, 예방접종이 답!

헐레벌떡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태연, 가방을 집어 던지고 아빠를 불러댄다. 

“아빠, 아빠!! 헥헥, 제 친구 유정이 있잖아요, 유정이가, 학교에 못 와요!” 

“엥? 그게 무슨 소리냐. 유학이라도 간다던?” 

“그게 아니라요, 처음에는 열나고 머리 아프대서 감기에 걸린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다음날에는 드라마 임신장면처럼 막 구역질까지 하는 거예요!” 

“그래서 A형 간염이라고? 다른 애들한테 옮길 수 있으니까 당분간 등교하지 말라고 선생님이 그러셨구나?” 

“헐, 대박! 어떻게 한번에 그걸 아세요?” 

“그야, 지금이 6월이니까 그렇지. 원래 A형 간염이 겨울에는 별로 안 생기다가 5월이 지나 6월에 가장 많이 발병하거든. 하지만 아직 어리니까 금방 지나갈 거야. 원래 A형 간염은 성인이 걸렸을 때 훨씬 심각하거든. 열나고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할 정도로 피곤하고, 온몸 마디마디가 쑤시니까 처음엔 감기로 오해하기가 쉽지. 하지만 밥맛이 딱 떨어지고 구역질까지 한다면 A형 간염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뜻이고, 거기다 소변이 콜라색처럼 진해졌다면 그건 병세가 심각한 수준이 됐다는 거야. A형 간염은 대부분 저절로 낫지만, 요즘엔 한 달 이상 심하게 앓는 경우도 적지 않고, 아주 드물게는 간부전이나 신부전 등의 합병증을 일으켜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으니까 무시할 수 있는 병은 아니란다.” 

“그럼 어릴 때 걸리는 게 차라리 나은 거네요?” 

“그렇지. 사실 20~3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이 어릴 때 감기처럼 대수롭지 않게 A형 간염을 앓았단다. 그래서 성인의 90% 이상이 A형 간염 항체를 갖고 있었지. 그런데 세상이 너무 깨끗해져서 어릴 때 걸리지를 않으니까 성인이 돼서 발병하는 사례가 오히려 많이 늘어나고 있는 거란다.실제로 요즘에는 A형 간염의 80%가 20~30대에서 발생하고 있고, 40대 이상에서 발병하는 경우도 10%가 넘어요. 

“대체 어떻게 걸리는 건데요?” 

A형 간염 바이러스(Hepatitis A Virus, HAV)에 감염된 음식을 먹으면 걸리는데, 이 바이러스는 주로 감염자의 대변을 통해 이동을 한단다. 예를 들자면, 감염자가 대변을 누고 손을 깨끗이 닦지 않은 상태에서 만든 음식을 먹는다거나, 또 옛날에는 대변을 정화하지 않고 하천에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니까 감염된 대변으로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해서 걸리는 거지. 이렇게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곳에서 퍼지기 때문에 일명 ‘후진국병’으로도 불리고, 또 감염력이 높아서 ‘유행성 간염’으로 불렸단다. 

“또, 똥이라고요? 똥으로 옮아요? 그럼 유정이도 똥을 먹어서?!! 문득 ‘자나 깨나 똥 조심 꺼진 똥도 다시 보자’라는 표어가 생각나요.” 

“자나 깨나 불조심이겠지! 암튼, 비위생적인 식당에 갔거나 뭐 그래서 걸렸을 거야. 그렇지만 아까 말했듯이 어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니 그게 아니라, 저도 옮았을까 봐 그러죠. 똥 병에 걸리긴 진짜 싫단 말이에요.” 

“똥 병은 좀 오버다, 대변으로 옮긴 하지만. 암튼, A형 간염에 걸리지 않는 제일 좋은 방법은 백신을 접종하는 거란다. 보통 접종 후 6~12개월 뒤에 추가 접종을 하면 95% 이상 항체가 생기거든.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A형 간염 항체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고, 심지어는 예방접종을 했었는지조차 잘 모른다는 거야.” 

“그럼 아빠는 백신 맞았어요?” 

“아니, 어릴 때 틀림없이 앓고 지나갔다고 봐. 너도 알다시피 할머니가 좀 지저분하시거든.” 

“그럼 저는요?” 

“너는 이제 맞히려고 생각 중이었어. 어릴 땐 걸린다 해도 별거 아니라서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오늘 백신 접종하러 갈까?” 

“네에?! 오늘이요? 지금 당장?!” 

“말나온 김에 오늘 가지 뭐, 5월부터는 A형 간염 예방 주사도 공짜로 맞을 수 있단다. 어서 준비해!” 

“엉, 엉~ 난 끝장났어요. 지난번에 유정이가 학교에서 똥 누고 손도 안 닦고선 소시지를 손으로 뚝뚝 잘라서 나눠줬단 말이에요. 저는 날름날름 맛있게 받아먹었고요. 엉~” 

“손을 닦았는지 안 닦았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같이 싸고 같이 안 닦았으니까 알죠. 엉엉~, 나 똥 병 걸렸어!”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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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은 못생겼다?!

 


“에~취, 에에에에~ 취취!!”

늘 그렇듯, 봄날 태연의 아침은 끊임없는 재채기와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아침밥상에 앉은 태연의 콧구멍에는 언제나 작게 돌돌 말아 꽂은 휴지가 꽂혀있다. 전날 밤에 흡입한 라면의 흔적으로 퉁퉁 부어오른 눈두덩과 콧구멍 아래로 분필같이 길게 빠져나온 허연 휴지는, 치열한 권투시합에서 막 지고 내려온 복서의 얼굴을 연상케 한다.

“태연아, 제발 밥 먹을 땐 그 콧구멍 휴지 좀 빼면 안 될까? 아빠가 비위가 좀 약해서 말이야.”

“뺄까요?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인해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폭포수처럼 코에서 흘러내릴 텐데, 식사하실 수 있겠어요?”

“아, 아니다. 잘 봉합해 두렴. 그러게 꽃가루 날릴 땐 그만 좀 싸돌아다니라고 그랬잖니. 꽃가루 알레르기 있는 거 뻔히 알면서.”

“아빠, 저도 엄청나게 신경을 써요. 솜털처럼 하얗게 뭉쳐 날아다니는 꽃가루가 있는 곳이나 화려한 꽃이 활짝 펴 있는 곳은 가지 않는다고요.”

“태연아,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신경을 썼었구나. 우선, 그 솜털은 버드나무나 포플러의 씨털이지 꽃가루가 아니에요. 당연히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지. 또 개나리, 벚꽃, 철쭉같이 화려한 꽃에서 나오는 꽃가루들은 알레르기의 원인이 아니란다.

“예에? 그런 게 아니면 대체 뭐가 원인이라는 거예욧?”

“화려한 꽃들은 벌레를 유혹해서 수정을 돕게 하는 충매화야. 이런 꽃들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벌레가 알아서 꼬이고 수정도 도와주지. 하지만 참나무, 자작나무, 소나무의 꽃은 작고 예쁘지도 않은 데다 잎과 구분도 잘 되지 않는단다. 그러니 벌레가 찾아와 줄 리 없겠지. 그래서 이런 꽃들은 머리카락 굵기 절반 정도(평균 30㎛)의 매우 작은 꽃가루를 많이 만들어서 최고 800km 떨어진 곳까지 멀리 날려 최대한 수정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사용한단다. 이런 꽃들을 풍매화라고 부르지. 이렇게 작은 꽃가루들은 호흡기에서 걸러지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인체로 들어와서 알레르기성 비염, 결막염, 피부염, 기관지 천식 등을 일으키게 된단다.

“흑, 안쓰러워요. 예쁜 꽃들은 얼굴만 디밀어도 수정을 할 수 있는데, 못생긴 꽃들은 한반도 끝에서 끝까지 꽃가루를 날릴 정도의 노력을 들여야만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로군요. 어쩜 자연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와 그리도 닮아있는 걸까요.”

“왠지 모를 동병상련을 느끼는 네 마음은 어렴풋이 알겠지만, 그렇다고 꽃가루 알레르기를 방치하면 안 되겠지? 지금부터 아빠가 하는 말 잘 새겨듣고 꼭 지키도록 하렴, 알겠니?”

“콧물 폭포를 멈출 수만 있다면 한번 노력해 볼게요.”

꽃가루는 주로 새벽에 방출돼서 오전 10시 정도까지 공기 중에 가장 많이 떠 있단다. 그러니까 3월부터 5월까지 특히 4월에는 아침 외출을 하지 않는 게 좋아. 꼭 나가야 할 때, 그러니까 학교에 갈 때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챙겨 쓰고 말이야. 특히 기온이 높고 날이 맑으며 살랑살랑 바람이 불 때 가장 잘 퍼지니까, 그런 날씨다 싶으면 절대 아침외출은 삼가야 한단다.”

“살랑살랑 봄바람 부는 청명한 아침이라…. 제일 좋을 때 못 나가는 거네요.”

“그리고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꽃가루농도위험지수’를 꼼꼼히 챙겨보는 것도 중요해요. 위험지수가 높은 날에는 가급적 창문을 열지 않고 외출할 때도 마스크를 꼼꼼히 챙겨야 한단다. 또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는 현관문 들어서기 전에 옷을 툭툭 털어서 꽃가루를 떼어낸 뒤, 집에 들어가서 곧바로 깨끗하게 샤워를 해야 하지.

“엄청 귀찮기는 하겠지만, 일단 봄에만 좀 신경 쓰고 살아볼게요.”

“아, 하나 빼먹고 얘기했구나. 꽃가루는 봄에만 있는 게 아니란다. 참나무, 자작나무 등이 꽃가루를 뿜어내는 3월부터 5월까지가 가장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할 때지만, 여름과 가을에도 잡초(돼지풀, 쑥 등)와 잔디에서 나오는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일으키니까 조심해야 해.

“그런데요 아빠, 생각해보니 꽃가루를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아요. 차라리 온몸으로 꽃가루를 맞으며 그들의 지혜를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엥?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눈에 띄지도 않는 보잘것없는 외모지만, 종족번식이라는 위대한 목적을 위해 온몸을 쥐어짜며 노력하는 그 아이들의 투지를 배우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도 잘생긴 남자애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그런 계집애들을 이길 수 있는, 나만의 종족번식 비법을 찾아내는 거죠오오…, 에에~ 에취이!!”

“헐, 태연아. 넌 꽃이 아니잖니. 동병상련 놀이는 그만두라고!”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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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꽃 피는 봄, 만개하는 우울증

 


태연과 아빠 멍~한 표정으로 창가에 턱을 괴고 아파트 뒷산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을 바라본다. 은은한 꽃향기가 코를 간질이고, 휘잉~ 바람이 불자 꽃잎 하나가 창문 안으로 살랑대며 들어온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봄날이다. 그러나 태연과 아빠, 표정이 영 어둡다.

“딸아, 꽃이 폈구나.”
“그러게요.”
“벚꽃이구나.”
“그러니깐요.”
“넌 왜 기분이 엉망이냐?”
“아빠는 왜 우울하세요?”

“이게 다 계절 탓이지. 원래 봄이 되면 우울증이 많이 발병하거든. 건강보험공단이 최근 4년(2009~2012년)간 우울증으로 병원을 방문한 사람들을 조사했더니 2~3월에 가장 환자가 많이 늘어났다고 하는구나. 또 통계청 발표를 봐도 4~5월 자살률이 제일 높고. 암튼 봄이 우울을 부른다는 얘기지.”

“헐. 날 따뜻해지고 꽃피면 기분이 좋아져야지, 도대체 왜 더 엉망이 되는 걸까요?”

“그러게 말이다. 의사들도 도통 그걸 모르겠다는구나. 흔히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해진다고 하는데, 세로토닌은 일조량이 많을수록 분비가 활발해지거든. 그렇다면 따사로운 봄 햇살이 비치기 시작할 때 겨울철 우울증도 슬슬 사라져야 한다는 건데, 거꾸로 더 우울한 사람이 많아지니 의사들도 답답할 노릇이겠지.”

“전, 이유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저보다 백만 배는 못생긴 말숙이는 삼시세끼 진수성찬 차려줄 거 같은 차승원 아저씨 닮은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꽃미모인 저는 12년 평생 모태솔로라는 게 기막혀서 우울한 거예요. 거기다 날씨는 왜 또 이리 화창한지, 더 꿀꿀해요.”

“그래, 의사들도 그런 말을 하더구나. 계절은 더없이 화려해지는데 자신만 초라한 거 같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우울한 것일 수 있다고 말이야. 또 계절이 바뀌면서 감정기복이 심해진 탓일 수도 있고, 진학·취업·승진과 같은 자꾸만 생겨나는 새로운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는 구나. 원인은 명확치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울증 급증이 심각한 문제라는 거야. 의욕과 집중력이 떨어져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건 물론이고, 소화불량과 체중증가, 수면장애…, 심하면 자살시도까지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헐, 몸무게까지 늘어난다고요?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에요! 아빠, 이 망할 놈에 우울함을 없애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

“제일 좋은 건 햇볕을 쬐는 거지. 하루 30분 이상 따뜻한 볕을 쬐며 산책을 하면 세로토닌 분비가 활발해져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구나. 또 뭔가 집중할 수 있는 즐거운 거리를 만들거나, 편한 사람과 신나게 수다를 떠는 것도 도움이 되지. 그리고 무엇보다 뇌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찾아 먹는 것도 우울증 치료에 효과적이란다.”

“엥? 뇌 건강에 좋은 음식이 따로 있어요?”

“그럼, 우울증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에 염증이 있는 경우가 30% 정도 많은 데, 이 염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음식들이 따로 있단다. 미국의 건강정보 사이트 ‘에브리데이헬스닷컴(Everyday Health.com)’이 밝힌 염증에 도움이 되는 식품을 보면, 가장 좋은 건 녹색잎채소라는 구나. 시금치, 케일 같은 초록색 채소는 염증 치료 효과가 뛰어나고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는 것까지 막아주지. 또 식물 중에서 오메가-3 지방산을 가장 많이 함유한 호두나 뇌에 좋은 지방이 다량으로 들어있는 아보카도 그리고 각종 베리류, 버섯, 양파, 마늘, 토마토, 콩류도 도움이 된단다.”

“음…, 피자와 치킨이 빠져있는 게 흠이긴 하지만, 지금 말씀하신 음식 위주로 먹어볼게요. 그런데 과연 엄마가 이런 재료로 요리를 해줄까요? 엄마도 요즘 우울함이 상당하시던데요. 리모컨을 끌어안고 하루 종일 홈쇼핑 채널만 보고 계시더라고요.”

“그러게 말이다. 아빠도 지금 그것 때문에 지금 기분이 엉망이야. 엄마가 우울하니까 홈쇼핑에 빠져 매일같이 택배가 오고, 아빠 지갑은 점점 얇아지고, 우울한 마음에 자꾸 먹었더니 배는 남산만 하게 불러오고, 이 꽃다운 계절에 나 혼자 살찌는 거 같아서 더 우울해지는…, 흑, 악순환이야. 딸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음, 이럴 땐 솔직한 게 최고죠. 엄마~아! 아빠가 엄마 때문에 우울해 죽겠대요! 아빠 배 나온 것도 다 엄마 때문이고, 엄마는 완전 쇼핑중독녀래요!!”

“태…, 태연아!”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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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무드셀라 증후군?!

“너! 를! 나만의 여자로 만들겠다는 꿈이 생긴 거야~”

TV를 보며 신 나게 몸을 흔들어대는 아빠. 그런 아빠가 못마땅한 태연은 한 마디를 한다.

“아니, 가요 프로그램은 5초 이상 보지 않는 아빠가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요? 게다가 육중한 몸으로 춤까지…, 지진 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TV엔 최신가요가 아닌 90년대 음악인 터보의 ‘나 어릴 적 꿈’이 흘러나오고 있고, 9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아빠는 본인 말로는 ‘잘 나갔던’ 시절을 회상하며 몸을 흔들고 있다.

“태연이 니가 몰라서 그렇지, 아빠가 대학교 때는 엄청 잘 나갔어요~. 내가 신촌 바닥 좀 쓸고 다녔지.”

“네?! 아빠가요? 저렇게 뚱뚱한대? 90년대엔 뚱뚱한 사람이 잘 나갔나? 도대체 90년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TV엔 온통 90년대 이야기뿐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TV엔 온통 90년대 이야기뿐이다. 90년대 사람들, 90년대 노래와, 90년대 패션…. 2003년도에 태어난 태연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땐 이 몸이 아니었지~, 그땐 말이다, 태연아, 아빠에겐 젊음이 있었고, 낭만이 있었으며, 자유로움이 있었지. 날 따르는 여자 후배들도 많았고, 난 누구나 꿈꾸는 멋진 선배였지…. 아~! 아름다웠었는데.”

“아름다웠다고요? 아빠가요?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빠가?!”

“그러엄~! 그땐 모든 게 다 아름다웠단다, 딸아~.”

아빠, 너무 아름다운 기억만 갖고 계신 거 아니에요? 아빠, 무드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 같아요.

“무…, 무드? 무슨 무드?!”

“그냥 무드가 아니라 무드셀라 증후군이요.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것이며,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겨두려는 인간의 심리를 말하죠. 즉, 일종의 퇴행 심리예요. 아빠의 대학생 시절에 분명 암흑기가 있었을 텐데, 아빤 그런 기억은 다 지우고 본인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무드셀라 증후군을 가진 사람은 과거의 일을 떠올릴 때, 좋은 기억만 남기려는, 즉 기억왜곡현상을 나타내는 것이죠.

“아냐~. 태연이 니가 몰라서 그렇지 내 젊음은 정말 아름다웠다고! 너야 말로 모르는 걸 왜곡하지 마!”

“아빠는 지금 무드셀라 증후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군요, 예를 들어 친구랑 대판 싸웠는데, 시간이 흘러 싸운 기억은 모두 잊고 재밌게 놀았던 기억만 갖고 친구와 계속 친하게 지낸다면, 그것은 무드셀라 증후군의 장점이겠죠. 하지만 지금 아빠는 과거의 좋았던 기억만 갖고 현실은 도피하려는 무드셀라 증후군의 단점 증상을 보이고 있어요. 아빠는 지금 2015년에 살고 있다고요~, 정신 차려요, 아빠!”

“흠…, 난 현실을 도피하려는 게 아냐. 그냥 나의 젊은 시절이 아름다웠고, 지나간 시절이 그리울 뿐이며, 시간이 이렇게 벌써 흐른 게 아쉬울 뿐이라고!”

“적당히 해야죠, 적당히~. 벌써 며칠 째예요? 봤던 거 또 보고, 봤던 거 또 보고…. 이제 제가 다 외우겠어요! 무드셀라 증후군은 자신이 처한 현실이 우울할수록 더 잘 나타난대요. 흑흑, 아빠, 제가 앞으로 잘 할게요. 어서 돌아와요. 흑흑….”

“아이~, 참,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울긴 왜 울어?! 아빠는 맘대로 추억에 빠지지도 못하냐?!”

증후군이란 단어로 돼 있어서 질병이 아니라고…, 본인은 괜찮다고…, 그렇게 아빠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래요. 하지만 그건 본인 위안일 뿐이라고……, 흑흑.”

“에휴, 알았다, 알았어, 돌아왔다, 돌아왔어. 짠~! 아빠 돌아 왔어요~,”

추억에 잠시 빠지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찾아 주기도 하지만, 너무 과하면 문제가 돼요. 현실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연습도 필요해요. 자~, 이제 저를 받아들여 주세욧.”

“알았다, 알았어. 그나저나 우리 딸, 언제 이렇게 똑똑했었나?! 무드셀라 증후군 같은 어려운 단어도 척척 설명하고 말야.”

“아빤 뭐, 제가 매일 놀고, 먹고, 자고…, 그러는 줄 아세요? 저도 다 알건 안다고요!”

“우리 딸, 이제 다 컸네~! 내가 딸 하나는 잘 키웠다니까!”

딸의 간곡한 부탁에 훌훌 자리를 털고 나가는 아빠, 감춰둔 휴대전화를 꺼내는 태연은 혼잣말을 한다.

‘큭큭, 이젠 EXO 오빠들 실컷 볼 수 있겠네~! 역시 사람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해!’


글 : 심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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