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역사를 새로 쓰다, ‘힉스’의 발견

2012년 7월 4일 현지 시간으로 9시 반이 좀 지났을 무렵, 제네바 근처의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의 대강당에 모인 사람들에게서 첫 번째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물리학 세미나에서 발표 중간에 박수가 나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내가 물리학을 전공하고 이십여 년 동안 여러 학회와 세미나를 참가했지만 이전에는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이 세미나는 CERN에서 건설한 역사상 최대의 가속기 실험인 대형강입자가속기(LHC)의 두 검출기인 CMS(Compact Muon Solenoid)와 아틀라스(ATLAS, A Toroidal LHC Apparatus) 팀이 2012년 상반기에 얻어진 데이터로부터 힉스 입자를 탐색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첫 번째 박수가 나온 시점은 CMS에서 두 개의 광자 신호로부터 새로운 입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99.9999%라고 보고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주요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박수는 계속 터져 나왔고, 이어진 ATLAS의 세미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세미나가 끝나고 CERN의 소장 롤프 호이어가 “우리가 새로운 입자를 보았다(observation)”는 것을 선언하자, 청중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반세기가 넘는 CERN의 역사에서, 아니 입자물리학의 역사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이었다.

1896년 독일의 화학자 빙클러(Clemens Winkler)는 ‘아쥐로다이트(Argyrodite)’라는 화합물을 분석하다가 이전까지 아무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원소를 발견했다. 게르마늄이라고 이름붙인 이 원소는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정리한 주기율표에 빈자리로 남아있던 원소였다. 1964년 미국 브룩헤이븐 연구소의 사미오스(Nicholas Samios)는 가속된 양성자를 표적에 충돌시키는 실험을 통해서 오메가(Ω-)라고 불리는 입자를 발견했다. 이 입자는 미국의 물리학자 겔만이 자신의 이론을 통해서 매우 정확하게 예측한 입자였다.

이와 같이 새로운 입자를 발견하는 일은 현대의 물리학에서 낯설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힉스 입자를 발견하는 일에는 왜 특별히 많은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왜 이렇게 열광하는 걸까? 각종 언론에서는 힉스 입자의 발견으로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힐 수 있게 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 이유를 차근차근 알아보자.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는데 있어 가장 커다란 질문 두 가지는 ‘우주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물질이란 무엇인가’ 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의 모습, 그 시작과 끝을 연구해온 사람들은 우리 우주가 약 137억 년 전에 탄생해서 진화해 왔음을 알게 됐다. 물질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해온 사람들은 물질을 이루는 원자가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했고, 더 근본적인 입자의 존재와 그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했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우주는 태초에 ‘빅뱅’이라고 불리는 아주 작고 뜨거운 상태였기 때문에, 우주의 시작을 논하기 위해서는 입자물리학의 지식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즉 가장 근본적인 두 질문은 서로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자연을 이루는 물질들이 상호작용하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다. 우리가 언제나 느끼고 있는 중력, 사실상 우리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현상을 일으키는 전자기력, 원자핵을 만드는 매우 강한 핵력과 원자핵 속에서 일어나는 약한 핵력이 그 네 가지 힘이다. 그리고 기본 입자들이 중력을 제외한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을 통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를 하나의 방정식으로 표현한 것이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the Standard Model)이다.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은 수많은 실험적 검증을 거친 가장 성공적인 이론으로서, 기본적으로 세 가지 원리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 하나는 양자론이며 다른 하나는 특수상대성이론, 마지막 원리는 게이지 대칭성이라는 원리다. 현대물리학의 기초가 되는 앞의 두 원리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게이지 대칭성은 맥스웰의 전자기 방정식에서 찾아낸 원리로, 상호작용을 묘사하는 기초가 된다. 이렇게 세 개의 원리와 관측된 몇 가지 사실에 의해 우주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하나의 방정식이 나오는 것이다. 정말 굉장한 일이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이 원리만을 가지고는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입자의 ‘질량’이다. 입자의 질량을 설명하기 위해 표준모형에 도입된 새로운 원리가 힉스 메카니즘이며, 그 결과로 힉스 입자라는 새로운 입자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니까 힉스 입자는 137억 년 전 우주탄생 직후에 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한 입자인 셈이다. 그동안 힉스 입자가 밝혀지지 않아 표준모형에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었다.

이번에 LHC에서 힉스 입자가 발견됨으로써 입자의 질량이 생기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이제야 표준모형의 모든 부분을 검증하고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표준모형이 적용되는 범위까지는 올바른 자연의 법칙을 알고 있다고 말해도 좋겠다. 여기서 올바른 이론이란 엄청나게 복잡한 진짜 이론을 이상화시킨 근사적인 이론이 아니라, 진짜 옳고 아주 구체적인 부분에까지 옳은 이론인 것이다. 사실 힉스 메커니즘이라는 새로운 원리가 표준모형이 예측한 대로 정확하게 재현된다는 사실은 전율을 일으킬 만큼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아직 우주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우리는 우주의 물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물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우주의 에너지의 70%에 이르는 부분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입자가 전부인지, 우주가 시작될 때는 다른 입자가 더 있었는지도 알 수 없고, 중력이 다른 힘들과 왜 그렇게 다른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우주와 물질에 대한 탐구를 결코 그치지 않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표준모형은 가장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다. 힉스 입자의 발견은 이제부터 우리가 새로운 탐구를 해나가는 출발점이 정확히 어디인지를 가르쳐 주는 사건이다.

글 : 이강영 건국대학교 물리학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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