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고라’로 보는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진실을 알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죽어도 좋아”

로마제국이 최후를 맞이하는 격변의 시기, 미모와 지성을 겸비해 모든 남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세기의 여인이 영화로 되살아났다. 이미 2009년 스페인에서 개봉됐으며 2011년 우리나라에 수입돼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영화 ‘아고라’는 4000년대 초 알렉산드리아의 자연철학자이자 인류 최초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히파티아’란 이름이 다소 생소하지만 서양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유명인사다. 그녀는 18세기 근대유럽 문학작품은 물론 예술작품에도 종종 등장하며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예술작품 속에서 그녀는 늘 젊고 똑똑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녀의 애제자였던 시네시우스(Synesius)는 그녀를 가리켜 ‘플라톤의 머리와 아프로디테의 몸’을 지녔다고 묘사했다.

그녀를 소개하는 문구들을 보면 인류 최초의 여성 수학자 외에도 천재 천문학자, 뮤즈의 여신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만큼 그 시대에 그녀의 능력은 뛰어났다. 당시 수학은 귀족들의 학문이었고 여성이 수학을 배우기란 더더욱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는 수학, 천문학, 철학까지 능통할 수 있었던 걸까? 이는 그녀의 ‘환경’과 ‘노력’이 합쳐진 결과였다.


그림 1 인류 최초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히파티아(Hypatia, 355~415)는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히파티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 ‘테온’이다. 테온은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다.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관장이기도 했다. 테온은 스승으로서의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가장 큰 스승이었던 셈이다. 그는 자신의 딸에게 자신이 아는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지식을 형성하고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식별력도 가르쳤다.

게다가 그녀가 나고 자란 알렉산드리아는 세계적인 학문의 중심지였다. 모든 문명국에서 학자들이 모여들어 자신들의 학문을 나눴다. 덕분에 그녀는 예술, 문학, 자연과학, 철학까지 균형 잡힌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히파티아가 수학자로서 명성을 알리기 시작한 곳은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한동안 머물렀던 아테네에서였다. 교육을 마치고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왔을 때 행정장관이 수학과 철학을 가르쳐달라며 대학으로 초빙했다. 그렇게 그녀는 암모니우스, 히에로클레스 등 훌륭한 학자들이 강의를 했던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그녀는 강의에도 재능이 있었다. 당시 그녀의 강의를 듣기 위해 세계 각 지역에서 몰려들었을 정도다.


그림 2 히파티아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쳤다. 영화 ‘아고라’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아고라 공식 사이트

그녀는 수학, 천문학과 관련된 저술활동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쉽게도 그녀가 집필한 책은 단 한 권도 남아있지 않다. 10세기 말경 그리스 문학사전 편찬자인 수이다스(Suidas)는 몇 권의 책이 그녀의 것이라 썼으나 불행히도 이런 책들의 대부분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함께 완전히 파손됐거나 폭도들이 세라피스 신전을 약탈할 때 분실됐다.

이렇듯 현재 그녀와 관련된 시료 중 남아있는 자료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15세기 경 바티칸 도서관에서 그녀의 저서 『디오판토스의 천문학적 계산에 관하여』 일부분이 발견됐다. 디오판토스의 대수는 1, 2차 방정식을 주로 다뤘다. 여기에 히파티아는 몇 가지 다른 풀이과정과 상당수의 새로운 문제를 담아 놨다.

이 외에도 디오판토스의 책을 대중화시킨 『아폴로니우스의 원추곡선에 관하여』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천문학자이기도 했던 그녀는 알마게스트에 관한 해설서도 집필했다. 알마게스트는 오늘날까지 유명한 천문학 저서로,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의 대표작이다. 그녀의 집필 활동은 대부분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평생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연구와 강의에 몰두하던 히파티아,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처참하기만 하다. 마차를 타고 강의를 가던 히파티아를 광신도들이 납치해 잔인한 고문 끝에 산채로 불 태워 죽였다고 한다. 그녀는 이교도 관습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기독교를 숭배하지도 않았다. 종교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취하던 그녀는 모함을 받아 종교 전쟁 혹은 정치적인 전쟁의 재물로 바쳐진 것이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그녀의 성품에 대한 의견은 거의 다음과 같이 집약된다. 윤리적 용기와 공정함, 정직함, 지적 용기를 가진 여인. 히파티아가 했던 유명한 대사로 “나는 진리와 결혼했다” 가 있다. 왕자나 철학자들이 그녀에게 구혼할 때마다 그녀가 거절할 때 사용했던 말이다.

그녀는 독신을 고집하며 죽는 날까지 학문 연구와 강의에 몰두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정답에 근접한다면 기꺼이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 속 대사가 그녀의 삶을 한 번에 정리해 주는 듯하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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