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괴짜노벨상, 엽기노벨상으로 불리던 이그노벨상. 하지만 2010년에는 이 상을 더 이상 웃자고 주는 상으로 여길 수 없게 됐다.

이그노벨상 수상은 2010년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9월 30일, 예년과 마찬가지로 하버드 대학교 샌더스홀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여행할 수 없었던 공중보건상 수상자 매뉴엘 바레이토 등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수상자가 참가했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그노벨상에 대해 ‘우스개 연구나 하는 변두리 학자들만 모이는 것 아니냐’, ‘괴짜들만 모여서 자기들끼리 하는 잔치가 아니냐’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면, 이번이 과감히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그노벨상은 이제 과학자라면 한번쯤 시상대에 서 보고 싶은 특별한 행사로 여겨지고 있다. 이 상은 쉽게 주어지는 상도 아니다. 이그노벨상을 받는 데는 노벨상만큼이나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2010년 올해 공중보건상을 수상한 연구는 시상대에 서기까지 무려 40년을 기다려야 했다.

2010년 ‘진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안드레 가임 교수를 먼저 알아본 것도 이그노벨상이다. 가임 교수는 이미 2000년에 개구리 공중부양 실험으로 이그노벨상 물리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가임 교수의 연구 태도는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연구에서나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에서나 크게 차이가 없었다.

가임 교수와 그의 동료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에게 노벨상을 안긴 주인공은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그래핀’이다. 그런데 이들이 그래핀을 얻는 데 사용한 도구는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스카치테이프’였다. 그들에게는 별다른 실험 도구도, 특수한 환경의 실험실도 없었다. 그래핀은 이미 1947년부터 연구되기 시작한 소재였지만, 과학자들은 그래핀을 추출해내는 일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그래핀은 육각형 벌집구조를 이루는, 탄소가 딱 한 층만 있는 세상에서 가장 얇은 소재다. 흑연은 그래핀이 여러 장 쌓여 있는 탄소 층상구조를 하고 있는데, 가임 교수는 이 흑연에 테이프를 붙였다 뗀 것을 다른 테이프에 10~20번 가량 붙였다 떼는 과정을 반복해 한 층의 그래핀을 얻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가 다소 엉뚱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만나 노벨상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가임 교수는 최초로 노벨상과 이그노벨상을 동시에 수상한 과학자다. 앞으로 그처럼 이그노벨상과 노벨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과학자가 많아지게 될까? 그렇다면 이그노벨상이 노벨상으로 가는 관문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유머 감각이 위대한 과학자의 필수조건이라는 새로운 공식이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먼저 웃게 하고 그 다음 생각하게 하는 연구’라는 이그노벨상의 캐치프레이즈는 올해도 유효하다. 웃음과 함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2010년의 수상 내용을 살펴보자.

평화상에는 ‘욕하기가 고통을 덜어준다’는 영국 킬 대학 연구팀의 연구가 선정됐다. 얼음물에 손을 담그고 참는 실험에서 욕이나 다짐의 말을 한 실험 참가자 군이 그렇지 않은 쪽에 비해 고통을 더 잘 참고 실제로 느끼는 고통도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욕이 고통을 덜어준다는 것이 실제로 입증된 것. 이 연구에서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평소에 욕이나 다짐의 말을 잘 하지 않던 사람이 실험에 앞서 욕이나 다짐을 할 경우, 그 효과가 더 컸다는 사실이다. 욕은 유용하지만 평소에 늘 쓰는 것보다는 필요할 때 적절히 사용해야 더 효과가 크다는 가르침을 준 셈이다.

화학상 역시 상식을 깨는 연구에 주어졌다. 미국 MIT와 텍사스 A&M대학 연구팀이 수상했는데, 이들의 연구는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트렸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를 얻기 위해 심해에 기름과 천연가스를 방출하는 무모한 실험이 강행됐다고 한다.

수염을 기른 사람을 보고 지저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가? 그 생각은 이제 과학적으로도 사실인 것으로 입증됐다. 1967년, 미국 메릴랜드주 소재 미군 의료기관인 포트 데트릭 산업보건안전소 연구원들은 수염이 비위생적인 것을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는 수염 깎기를 한사코 거부한 동료 과학자를 설득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었다.

이 실험을 위해 마누엘 바레이토와 3명의 자원자가 몸소 실험대상으로 나섰다. 그들은 73일간 수염을 기른 뒤 수염에 세균을 뿌리고 씻어내기 어렵다는 점을 입증했다. 또 병원성 세균을 뿌린 수염을 마네킹에 붙인 뒤, 그 마네킹을 닭과 기니피그에 노출시키는 실험도 진행했다. 실험동물 중 일부는 정말 병에 걸렸다. 실험 결과를 본 동료 과학자는 결국 수염을 깎았고, 이 연구는 40여 년이 지난 2010년에 이르러서야 이그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편 물리학상은 뉴질랜드의 오타고 대학 물리학자들이 수상했다. 뉴질랜드 항구도시 더니든은 겨울철이면 빙판이 되는 길 때문에 시민들에게 신발 위에 양말을 덧신으라고 홍보해왔다. 하지만 양말을 신발 위에 신으면 덜 미끄럽다는 것은 통념에 불과한 일이었다. 오타고 대학 연구진들은 빙판에서 양말을 신발 위에 덧신은 보행자들을 조사해 실제로 마찰력이 늘어난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그 밖에도 생물학상은 박쥐의 구강성교를 증명해낸 중국 연구팀이, 공학상은 원격 조종 헬리콥터로 고래의 콧물을 모으는데 성공한 영국 연구팀이 수상했다. 이탈리아 카타냐 대학 연구팀은 직원들을 무작위로 승진시키면 조직이 더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내 경영학상을 수상했다.

이그노벨상은 거창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과학자들의 연구가 실은 얼마나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되는지, 얼마나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척도가 된다.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뗐다 20번 반복한 끝에 얻은 결과가 2010 노벨 물리학상으로 이어진 것처럼 과학은 멀리 있는,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번 이그노벨상 수상 내용을 보며 아직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우리나라에 부족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유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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