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머리카락 색깔은 갈색이고 키는 175㎝ 이상인 남자 아기로 낳게 해주세요. 저처럼 당뇨병은 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모가 원하는 아기를 얻을 수 있을까. DNA를 이루는 네 가지 염기 아데닌(A)·구아닌(G)·티민(T)·시토신(C)에서 이름을 딴 영화 ‘가타카(GATTACA)’에서 부모는 원하는 유전형질을 갖게끔 조절한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킨다. 이렇게 태어난 ‘맞춤형 아기’는 좋은 직업을 얻고 안락한 삶을 살아간다. 반면 시험관 시술이 아닌, 정상적으로 태어난 ‘신의 아기’는 ‘유전적으로 열등하다’고 하여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다. 가타카는 시험관 아기의 부정적인 면과 유전자 결정론을 묘하게 결합시킨 영화다.

그런데 10월 5일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시험관 아기의 아버지’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로버트 에드워즈 명예교수에게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여했다.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수많은 부부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불임 치료의 길을 열었다”고 에드워즈 교수의 업적을 평가했다. 에드워즈 교수와 함께 시험관 아기 기술을 개발한 패트릭 스텝토 박사는 1988년 사망해 수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시험관 아기 기술이 생겨난 때를 이야기 하려면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9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한 부부가 있었다. 부부 모두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뒤늦게 아내의 나팔관이 막혀 수정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부는 당시 생리학자이던 에드워즈 박사와 부인과 의사였던 패트릭 스텝토 박사를 찾았다.

에드워즈 박사와 스텝토 박사는 여성의 난소에서 꺼낸 성숙한 난자와 남성의 정자를 작은 시험관 속에서 인공 수정시켰다. 수정란은 시험관 안에서 세포분열을 거듭했고, 여러 번 세포분열한 수정란을 자궁에 이식했다. 그리고 1978년 7월 25일. 영국 올덤 종합병원에서는 세계 최초로 ‘시험관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기는 예정일보다 20여 일 일찍 제왕절개수술을 통해 태어났다.

아기의 이름은 루이스 브라운. 건강하게 자라 2004년 결혼한 그는 3년 뒤 시험관 수정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분만으로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현재 32세인 루이스 브라운은 영국에서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루이스 브라운이 태어난 그해 10월 인도에서 두 번째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 1980년 호주에서 세 번째 시험관 아기가 세상의 빛을 봤다. 미국에서 난자의 과배란을 유도하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시험관 아기는 점차 보편화됐다. 한국에서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팀의 도움으로 1985년 10월 12일 첫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 지금까지 300만 명 이상이 시험관 시술을 통해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상은 ‘인류 문명의 발달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된다. 이 점에 초점을 맞추면 이번 수상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오늘날 아이를 갖지 못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불임환자가 2002년 10만 6,887명에서 2006년 15만 7,652명으로 50%가량 늘어났다.

불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환경호르몬·스트레스·잦은 음주 등 다양하다. 가령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려면 정액 1mL 안에 2,000만 개 이상의 정자가 있고, 그 중에서 활발하게 운동하는 정자 수가 60%를 넘어야 한다. 하지만 환경호르몬은 정자의 활동성을 낮춰 불임을 일으킨다. ‘정상 정자’라고 해도 정자가 나가는 길(정관)이 막혀있으면 불임의 원인이 된다. 난자의 배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나팔관이 막혀 있어도 아이를 갖기 어렵다.

하지만 시험관 아기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현대의학의 기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2008년 시험관 아기 탄생 30주년을 기념하며 “30년 뒤에는 인공 정자, 난자, 자궁으로 100세 노부부도 아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의대 산부인과학교실 구승엽 교수는 “시험관 아기가 지금이야 보편화됐지만, 처음 나올 당시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혁신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험관 아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우선 성공률이 30%로 낮은데 반해 비용이 커 살림이 넉넉지 않은 불임부부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다는 점이다. 약물로 과배란을 유도하면 보통 10여개의 난자가 배란된다. 이 중에서 실제 시술에 필요한 난자 수는 3~4개. 나머지는 냉동 보관하거나 실험실에서 연구용으로 사용된다. 한 달에 한 개씩 배란되는 난자를 인위적으로 과배란 시킨 것에 대한 후유증(과배란 증후군)을 앓을 수도 있고 난자가 다른 목적으로 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험관 아기가 전 세계적인 불임률을 높일 것이란 주장도 있다. 정자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시험관 아기로 아이를 얻으면 당장은 인구증가율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유전자를 받은 아이는 또 다시 불임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결과적으로는 불임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영화 가타카에서처럼 맞춤형 아기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현재 산부인과에서는 체외 수정으로 얻은 수정란의 유전정보를 검사해 정상적인 수정란만 자궁에 착상시키는 ‘착상 전 유전자 진단법(PGD)’이 쓰이고 있다. 부모가 갖고 있는 유전병이 아이에게 전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방법이 오·남용되면 맞춤형 아기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시험관 아기가 전 세계 수많은 불임부부에게 희망의 빛이 됐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에 박수치는 것과는 별개로 앞서 언급한 시험관 아기의 ‘그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시험관 아기에 열광할 때 가타카가 그리는 ‘우울한 미래’는 더 빨리 다가올지 모른다.

글 :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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