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기원전 1만 년의 어느 날, 북아메리카의 어느 평원에 매머드 한 마리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느릿느릿 걷고 있다. 매머드는 현재의 코끼리와 여러 면에서 비슷한 동물로 나뭇잎을 뜯어먹거나 식물의 연한 어린 가지를 뜯어 먹는다. 하지만, 키가 3미터가량으로 코끼리보다 크며, 코끼리 상아와 다르게 고리모양으로 휘는 상아를 갖고 있으며, 온몸이 두터운 털로 덮여 있다.

빙하기가 막 끝난 무렵이라 몸을 덮은 털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며 걷던 매머드가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호기심이 넘치는 매머드가 울긋불긋한 꽃 몇 송이를 발견하고는 다가가 파릇한 이파리들을 왕창 뜯어 입에 넣는다.

이때 수풀 너머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매머드는 몸을 움찔한다. 스밀로돈이 분명하다. 키는 자신의 절반도 안되지만 스밀로돈은 높이 솟아올랐다가 상대의 목에 20cm가량 길게 튀어나온 송곳니를 꽂아넣는 위협적인 공격력을 갖고 있다. 오늘날 ‘검치호'라고 불리는 동물이다. 하지만, 무리와 함께 있을 때는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스밀로돈이라도 땅을 울리는 매머드 무리를 만나면 일단 피하기 때문이다.

혼자인데도 이 매머드는 스밀로돈의 소리가 왠지 이상하다는 생각에 호기심을 뿌리치지 못하고 수풀을 헤치며 나간다. 그리고 발을 멈춘다. 눈앞에 놓인 커다란 구덩이에 스밀로돈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스밀로돈은 그림자를 보더니 걸음을 멈추고 말을 건다.

“누구냐? 나 좀 꺼내줘~!”
매머드는 아직도 입 안에 잔뜩 남은 꽃잎을 질겅질겅 씹으며 긴 코를 말아 올려 콧잔등을 긁는다. 그리고 웃으며 말을 건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
“고깃덩어리가 있기에 웬 떡이냐 싶어 달려들었는데 갑자기 땅이 꺼지더라고. 너무 높아서 기어오를 수도 없어. 이봐, 매머드. 나 좀 도와주지? 만약 꺼내주면 앞으로 넌 내가 보호해줄게.”
매머드가 순진하게도 뒷일을 생각지 않고 어떻게 구해줄 수 있을지 주변을 살핀다. ‘나무기둥을 넣어주면 타고 올라올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 매머드는 쓰러져 있는 나무기둥 근처로 간다.

이때 누가 불쑥 나타난다. 길게 튀어나온 부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부리의 주인은 포루스라코스다. ‘공포새’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가장 큰 포루스라코스는 키가 3미터 정도로 매머드와 맞먹을 정도다. 비록 날지는 못하지만, 새처럼 날개가 있다. 언뜻 보면 타조랑 비슷하지만, 훨씬 크고 빠르다. 특히 무척 긴 다리로 시속 60km 이상의 속력으로 사냥한다. 육식을 하는 이 새는 사람도 잡아먹어 식인새로도 불린다. 이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초식동물에 스밀로돈과 포루스라코스는 공포의 대상이다. 포루스라코스는 교활한 눈으로 곤경에 처한 스밀로돈을 비웃더니 매머드에게 말한다.

“절대 구해주지 마. 저기서 나오자마자 널 잡아먹을걸?”
스밀로돈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며 눈길을 피한다.

“사람이 만든 함정에 걸린 거야. 털도 없고, 달리기도 느리고, 힘도 약한 사람. 하지만, 그 녀석들은 머리가 좋아. ‘함정'이라고 들어봤어? 사람이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덮은 다음 미끼를 놓은 거야. 저 스밀로돈은 바보같이 거기에 달려든 거고. 아마 조금만 더 있으면 사람들이……”
매머드와 포루스라코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쭉 펴며 고개를 높이 든다. 사람들의 기척이 들린다. 사람들이 저 멀리서 몸에 짐승의 가죽을 걸치고, 손에 무기를 들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 일부는 말을 타고 오고 있다.

“……창으로 널 찌르고, 손발을 묶어서 데려갈 거야. 난 멀리서 본 적이 있어. 저녁이 되면 불을 피우고 낮에 잡아온 동물들을 구워먹고, 너희를 가축으로 길러 피라미드를 만들 거야. 돛단배로 바다 동물도 잡아먹더라고. 큰 이빨도 없고 날카로운 부리도 없고 덩치도 작지만, 어쩌면 사람이 제일 무서운 존재일지도 몰라.
포루스라코스는 말을 끝내더니 장난기 어린 눈을 하며 멍하니 있던 매머드를 한쪽 발로 툭 찬다.

“뭐해? 여기 있다가, 너도 저 아래 있는 바보 스밀로돈이랑 똑같은 꼴이 될 거야, 얼른 도망쳐!”
매머드는 포루스라코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며 허둥지둥 몸을 돌린다. 포루스라코스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뛰며 달아나다가 땅 위에서 잽싸게 움직이던 쥐 모양의 작은 동물 하나를 부리로 물고는 바람에 날리는 안개처럼 사라진다. 매머드는 얼마 전 사람에게 잡혀갔던 친구 하나를 떠올리며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사람들은 달리는 매머드보다 이미 사로잡힌 스밀로돈에 더 관심이 많다. 과학향기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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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제시한 내용은 최근 개봉한 ‘10,000 BC’ 영화에 등장하는 동물을 중심으로 영화 내용을 조금씩 넣어 재구성한 것이다. 동물이 말을 한다는 점은 잠시 제쳐놓더라도 앞 내용, 즉 영화에는 몇 가지 사실과 다른 오류가 있다.

영화에서 사람이 매머드로 돌을 나르게 하는 등 가축처럼 이용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사람은 기원전 1만 년에 비로소 정착하며 개와 같은 동물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매머드는 덩치가 너무 커 사람이 가축으로 기르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말 역시 5000~6000년 전에야 가축이 된 것이라서 이때 말을 타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더욱이 피라미드와 돛단배가 나오는데, 피라미드는 약 5000년 전에야 세워졌고, 돛단배는 약 4000년 전에 만들어졌다. 이들 장면은 사실과 다르지만, 영화감독이 영웅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려고 넣었다고 한다.

또한, 과학자들은 영화에서 식인새로 묘사된 포루스라코스가 실제 사람을 잡아먹지는 못했고, 오히려 사람의 공격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매머드와 포루스라코스를 같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들과 스밀로돈의 생존 시기는 겹치지만, 화석과 다른 증거를 볼 때 거주지역에 차이가 있다. 매머드는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에 걸쳐 있었지만, 남아메리카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포루스라코스는 남아메리카에만 존재했기 때문에 이 둘이 마주쳤을 확률은 거의 없다.

기원전 1만 년에 매머드 외에도 다양한 초식 동물이 있었다. 사슴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뿔의 길이가 3m에 달했던 초식동물 메갈로케로스, 아르마딜로와 비슷하게 생긴 도에디쿠루스는 꼬리에 여러 개의 뿔이 삐죽삐죽 달려 이를 무기로 사용했다. 또 나무늘보와 친척 관계이지만 몸무게가 4톤이 넘는 메가테리움도 있었다.

기원전 1만 년에 먹이 사슬의 최우위를 점하던 각종 육식동물과 반대 위치에서 살았던 초식동물을 왜 지금은 볼 수 없는지, 이들이 어떻게 멸종됐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의 사냥 때문에 멸종했다는 설도 있지만, 신빙성이 약하다. 아마도 기후의 변화와 이에 따른 생태 환경의 이동 때문에 멸종했을 것이다. 반면 사람은 다양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남았고, 도구를 사용해 오늘날 생태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다.
(글 : 김창규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ndsl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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