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일 고(故) 최요삼 선수가 뇌사판정을 받았다. 최 선수는 12월 25일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50.8kg) 타이틀 1차 방어전에서 상대 선수를 압도하며 심판 전원일치로 3-0 판정승을 거뒀다. 하지만 경기 직후 의식을 잃고 순천향병원으로 이송됐다. 경기 도중 받은 충격으로 뇌출혈이 일어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최 선수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뇌사 판정을 받은 날 자정에 장기적출을 해 공식적으로는 1월 3일 생을 마감했다. 최 선수와 가족의 동의로 6명이 새 생명을 얻었다. 최 선수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뇌사와 장기이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1968년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은 특별보고서를 통해 뇌사를 ‘Irreversible Coma’(비가역적 혼수상태)라고 정의했다. 즉 뇌가 영원히 기능을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특히 심장 박동이나 호흡처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뇌간이 죽었다. 따라서 뇌사가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심장이 멎어 죽음에 이른다. 인공호흡기에 의해 얼마동안 호흡과 심장박동을 연장할 수 있지만 회복할 가능성은 없다.

이점에서 뇌사는 식물인간과 다르다. 식물인간은 뇌의 일부가 손상을 입어 의식이 없지만 뇌간은 생생히 살아있다. 인공호흡기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호흡할 수 있고, 가끔 눈을 깜박이거나 신음소리를 내기도 한다. 수개월이나 수년 뒤에 기적적으로 깨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식물인간은 장기기증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뇌사는 장기이식을 전제로 할 때만 인정된다. 장기이식을 하려면 가능한 ‘건강한’ 상태의 장기를 얻는 것이 필수다. 그만큼 뇌사판정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져야 한다. 2002년 개정된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의해 뇌사판정에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우선 체온이 32℃ 이하로 떨어진 저체온상태나 저혈압 등으로 인한 쇼크 상태가 아니어야 한다. 마취제 같은 약물중독이나 저혈당 같은 내분비 장애가 있어도 안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뇌사가 아님에도 뇌사로 오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원인이 확실한 뇌의 손상이 있고 인공호흡기로만 호흡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이 조건 아래 외부자극에 반응이 전혀 없는지, 스스로 호흡하는 기능이 완전히 없어졌는지, 동공이 열려있는지, 뇌간반사가 완전히 소실됐는지 등을 검사한다. 뇌간반사란 대뇌를 거치지 않고 일어나는 반사다. 의식이 없어도 뇌간이 살아있으면 빛을 비추면 눈동자의 크기가 작아지고, 눈의 각막을 건드리면 눈을 감는 반사가 일어난다. 뇌사한 사람은 이 같은 뇌간반사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들 항목을 검사한 지 6시간이 지나면 앞의 검사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의사가 다시 검사한다. 그때도 똑같은 결과를 얻으면 뇌파를 검사해 30분 이상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은지 확인한다. 뇌사판정검사에 참여하지 않은 전문의 3명 이상을 포함한 6~10명의 뇌사판정위원회가 구성되고 여기서 전원이 찬성하면 최종적으로 뇌사판정이 내려진다. 이때 전문의 중에는 신경과 전문의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뇌사판정이 내려지면 가능한 신속하게 장기적출을 한다. 이때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장기를 척출하면 냉동상태로 보관해 신속히 병원으로 이송한다. 이때 장기를 제공받을 수여자는 이미 수술 준비를 마치고 수술대에 누워있는 상태다. 장기척출과 이식 수술이 순차적으로 맞물려 진행되기 때문에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장기이식에서 가장 큰 문제는 면역거부반응이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자신이 아닌 것을 죽이도록 프로그램 돼 있다. 기껏 넣어준 장기가 면역체계에 의해 파괴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이식을 할 때는 수여자에게 면역억제제를 다량 투여한다. 이때 수여자가 세균의 공격을 받으면 방어할 수단이 없으므로 무균실로 옮겨 철저하게 관리한다.

일단 몸이 이식한 장기를 받아들이면 면역억제제의 양을 줄여도 괜찮지만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 있다가 소생한 사람에게 이 정도 부담이 무슨 대수겠는가. 회복이 불가능한 손상을 입었을 때 장기이식은 최후의, 그리고 최선의 치료법이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2007년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는 모두 148명이다. 매년 조금씩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이보다 훨씬 빠르게 늘고 있다. 매년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100명 중에 불과 1명만 혜택을 받는다. 기다리다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 장기이식 뇌사자의 수는 100만명에 3.1명으로 스페인의 30명, 미국의 25명에 비하면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또 우리나라는 본인이 장기이식을 신청했어도 가족이 반대하면 성사되지 못한다.

다행스럽게도 최 선수의 아름다운 기증 소식으로 장기기증 신청자가 평소의 3배나 늘었다고 한다. 최 선수가 일으킨 작은 변화가 계속 이어지려면 장기기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할 수 있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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