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지워지지 않는 서명은 사람의 지문이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한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은 변하지만 지문은 한번 생겨나면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다. 물론 심한 습진 같은 피부병으로 지문이 일시적으로 지워지거나 고된 노동이나 화상 같은 사고 때문에 지문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평생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사람을 구별하는 데나 범인을 잡을 때 지문을 이용한다.

지문(指紋, fingerprint)이란 말 그대로 손가락 안쪽 끝에 있는 살갗의 무늬나 그것을 찍은 흔적을 말한다. 사람마다 유일하게 갖고 있는 타고난 지문은 임신 4개월째에 만들어진다. 손가락과 손바닥, 발가락과 발바닥 위의 작은 산과 계곡의 모양으로 배열된 선의 대부분은 유전자적 체계에 따라 만들어진다.

몇몇 쌍둥이의 경우 지문에서도 유사성을 보인다. 하지만 지문이 만들어지는 데는 압력의 비율, 모태 속 태아의 위치 등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쌍둥이조차 서로 다르며 왼손과 오른손의 지문 또한 다르다. 동양계와 유럽계의 지문에도 커다란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의 손가락에 있는 지문이 일치할 수 있는 확률을 억지로 계산해도 640억분의 1 정도라고 하니, 전 세계에서 지문이 같은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죄 수사에서도 힘을 발휘하는데, ‘법정증거’로 채택되지는 않지만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인 대신 도장의 사용이 더 일반적인 한자문화권에서는 도장이 없을 경우 서명과 같은 의미로 지장을 찍는 관습이 있다. 지문은 손가락에만 한정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손금으로 알려진 장문(掌紋), 발바닥에는 족문(足紋)이라는 게 있어 병원에서 아기를 낳으면 족문을 찍어 아이가 바뀌는 것을 막으며, 친자확인 등의 소송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흥미롭게도 원숭이, 침팬지, 오랑우탄 등의 영장류뿐 아니라 유대류(有袋類)인 코알라도 독특한 지문을 가지고 있다. 남미에 사는 원숭이들은 꼬리에 저마다 독특한 무늬를 가지고 있고, 소는 코 근처에 일생 동안 변하지 않는 울퉁불퉁한 무늬의 비문(鼻紋)이 있어 개체 식별에 쓰인다.

<경찰 과학수사계 직원들이 지문과 족적을 확인하는 가변광원장비(SL350)를 이용해 지문을
확인하고 있다. 지문은 사람마다 모양이 달라 범죄수사 등에 자주 활용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물론 지문은 범죄학에 이용하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지문이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여태까지의 정설은 지문이 손가락과 물체 표면의 마찰력을 높여 미끄럼을 방지해 무언가를 더 단단히 붙잡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실험결과에 의한 설은 아니지만, 100여 년 동안 과학자들 사이에 알려진 정설이다. 예를 들어 컵을 잡았을 때, 손가락 사이의 젖은 컵이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지문이 타이어의 홈처럼 막아주고, 또 발바닥의 주름 역시 수영장에서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실험 생물학 저널(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최신호에 이와 정 반대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화제다.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생체역학자 롤랜드 에노스 교수와 피터 워만 교수팀이 실제로 실험을 해보니 오히려 지문이 물체와 손 사이의 마찰력을 3분의 1이나 줄인다는 것이다. 이들이 마치 지문이 없는 것처럼 나타나게 하는 특수장치를 개발하여 플라스틱 투명판과 손 사이의 마찰력을 알아본 결과, 지문의 굴곡이 물건과 손이 닿는 면적을 줄임으로써 오히려 마찰력이 낮아졌다.

즉, 지문 사이의 가는 홈이 있기 때문에 물체와의 접촉면이 적어지면서 마찰력도 줄인다는 얘기다. 이 말은 접촉면이 넓을수록(지문이 없을수록) 마찰력이 커져 물체를 더 꽉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건을 단단하게 붙들기 위해서라는 기존의 주장이 틀리다면, 지문은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 생긴 것일까. 연구팀은 지문의 존재 이유가 무얼까 하는 새로운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그 해답을 ‘지문과 같은 골이 손의 촉각을 예민하게 한다’는 프랑스 학자들의 연구에서 찾았다고 한다.

에노스 박사팀은 지문이 생긴 이유에 대해, 지문이 손끝의 물기를 잘 빠지게 하는 배수로 역할을 해 젖은 표면을 잡을 때 더 잘 붙잡을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또 거친 물체를 잡을 경우 손과 발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임으로써 지문이 피부의 변형을 도와 손가락이나 발바닥에 물집이 잘 잡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이렇듯 실제 실험을 통해 지문의 역할이 새롭게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자들이 “에노느 박사팀은 사람 손이 촉감을 느낄 정도의 세기로만 실험했을 뿐 더 강한 힘이 주어지는 마찰력은 실험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그 의문이 완전히 풀린 상태는 아니다.

보통사람이라면 물건을 단단하게 붙들기 위해 지문이 있으면 어떻고, 손발에 상처 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 한들 무슨 큰 차이가 있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지문의 역할을 보다 정확히 이해해야만 의수나 로봇 손의 기능을 진짜 손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사람의 손처럼 물건을 만지고 잡으며 감각을 느끼게 하는 데 지문이 그만큼 중요한 열쇠라는 얘기다.

인류가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이유 중 하나는 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의 손이 가진 특별한 기능을 이해하려면 지문의 역할도 빼 놓을 수 없다. 손이 가진 섬세한 기능을 흉내 내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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