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으로 시작되는 3세대 휴대전화를 새로 구입하면 배터리 외에 손톱만 한 크기의 카드를 하나 더 구입해야 한다. 이 카드의 이름은 USIM. ‘Universal Subscriber Identity Module’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우리말로 하면 ‘범용가입자인증모듈’이라는 다소 긴 단어로 번역된다. 이 카드는 휴대전화 뒷면 배터리 옆에 장착하게끔 되어 있다.

‘범용가입자인증모듈’이라고 하면 무슨 소린지 알쏭달쏭하지만 이 카드는 쉽게 설명하면 아무 휴대전화에나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메모리카드다. 이 카드 안에는 가입자의 고유번호인 ESN(Electronic Serial Number)을 비롯해 비밀번호 등 서비스 개통에 필요한 정보가 모두 들어 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도 이 카드만 가지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휴대전화에나 붙여서 자신의 휴대전화처럼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해외 출장을 갔을 때도 현지에서 휴대전화를 하나 빌려 자신의 USIM 카드를 붙이기만 하면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USIM 카드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별도의 번거로운 절차 없이 새 휴대전화에서 바로 불러서 사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USIM 카드는 은행 공인인증서, 교통카드 기능 등을 모두 넣을 수 있어서 휴대전화의 기능은 물론, 회사 출입카드나 신용카드의 기능까지도 한다. 말 그대로 ‘만능의 카드’인 셈이다. 또한 이 카드는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복제폰’ 문제도 방지할 수 있다. USIM 카드는 복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USIM 카드의 중요한 장점 중 하나는 통신사업자에 상관없이 어떤 휴대전화에나 사용이 가능한 ‘범용’이라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통신사업자에 상관없이 쉽게 휴대전화를 바꿀 수 있게 된다. 즉, 시장의 중심이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이동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한때 이동통신사들은 USIM 카드의 잠금장치 해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카드의 장점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이동통신사의 입장에서도 무조건 반대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2008년 7월, USIM 카드의 호환이 가능한 범용 휴대전화 단말기가 출시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소비자의 마음대로 매월 이동통신사를 달리해가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해진 셈이다.

사실 유럽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USIM 카드와 유사한 SIM(Subscriber Identity Module) 카드를 사용해 왔다. 유럽은 우리와는 달리 여러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국경을 넘나들며 비즈니스를 하거나 거주하는 사람이 많았다. 예를 들면 벨기에에 살면서 프랑스의 회사로 출퇴근하거나 스웨덴과 덴마크를 오가며 사업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국경을 오가며 사업하는 사람의 경우는 국가별로 다른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거나 국경을 넘을 때마다 별도의 해외 로밍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SIM 카드 방식을 사용하면서 이런 불편함은 많이 해소되었다. 국가별 또는 휴대전화 사업자별로 SIM 카드를 구매해 두었다가 국경을 넘을 때 SIM 카드만 바꾸어 끼우면 한 대의 휴대전화를 계속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별도의 로밍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SIM 카드는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정착되었다.

USIM 카드를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에 이 카드를 잃어버리면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것 이상으로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도난 자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고객정보가 조그만 카드에 모두 들어 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USIM 카드의 잠금(lock) 기능은 아주 중요하다. 잠금을 설정해놓으면 암호를 입력하기 전에는 카드에 저장된 내용을 전혀 볼 수 없고 내용을 바꿀 수도 없다. 그래서 사용자가 정해놓은 횟수(보통 3회) 이상으로 틀린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USIM 카드는 모든 입출력 기능을 스스로 파괴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만약 비밀번호를 잃어버리면 주인이라고 해도 큰 낭패를 보게 되는 셈이다.

최근 이동통신사들은 시중은행, 금융결제원과 협력하여 뱅킹서비스인 ‘유비터치(UbiTouch)’를 선보이며 USIM 카드의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금융 USIM 카드에 여러 은행의 계좌정보를 발급받으면, 현금인출기에서 계좌이체 및 잔액조회 등이 가능하고 교통카드로도 쓸 수 있다. 예전에도 은행 서비스가 가능한 휴대전화나 교통카드 기능을 하는 휴대전화가 있었지만 모든 은행의 서비스가 휴대전화 한 대로 가능하게 된 것은 USIM 카드가 선보이면서부터다.

USIM 카드의 메모리 용량은 144KB로 아주 작게 느껴지지만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개발하여 본격적인 PC 시대를 연 애플 컴퓨터의 64 KB 메모리보다 2배 이상 크다. 64KB 메모리에 컴퓨터를 구동할 수 있는 운영체제와 프로그램, 데이터가 모두 탑재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144KB로도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국민 대다수가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전화를 단순히 통화의 수단으로만 사용하기에는 아까운 측면이 있다. 또 이동통신사의 입장에서는 이미 고객의 수가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새로운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나 서비스를 계속 발굴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필요와 요구 사항들이 맞물려서 한때 USIM 카드의 도입을 꺼리던 이동통신사들은 USIM 카드의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앞으로 USIM을 이종산업과의 통합을 위한 허브이자 휴대전화의 브레인 역할을 하도록 발전시킨다는 것이 이동통신사들의 구상이다.

ID카드, 전자화폐, 전자통장, 전자티켓, 모바일 인증서, 글로벌 결제서비스, 방송, 멤버십, 예약 등 이동통신사들이 개발하고 있는 대부분의 부가서비스 핵심에는 USIM 카드의 존재가 있다. USIM 카드가 활성화되면 지갑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수많은 신용카드와 회원카드가 필요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이를 위해서 144KB라는 기존 USIM의 메모리 용량을 늘리기 위한 고집적(HD) USIM 연구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장기적으로 USIM 카드는 근거리 통신이나 결재, 무선인식(RFID) 등과 결합해서 모바일 오피스, 전자책, 모바일 게임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즉, 통신이나 금융 중심 서비스에서 콘텐츠 및 어플리케이션의 중심축으로 그 영역이 넓혀진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한 개의 USIM에서 복수의 플랫폼 사용이 가능한 플랫폼 독립적인 휴대전화도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한 대의 휴대전화에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맥 OS, 리눅스 등 다양한 운영체제를 설치해두고 필요에 따라 적당한 운영체제로 변경해서 사용하는 방식도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가까운 미래에 USIM의 저장공간이 커져서 사용자의 다양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면 USIM은 다른 기술이 넘보기 어려운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글 : 이식 박사(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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